수십 톤 덮개돌을 어떻게 올렸나 — 고인돌 축조에 동원된 힘과 사람
들판에 큰 돌이 놓여 있습니다. 아래에 작은 돌 몇 개가 받치고 있고, 그 위에 넓적한 돌 하나가 얹혀 있습니다.
무심히 지나치기 쉬운 형태인데, 무게를 알고 나면 달라 보입니다. 큰 것은 수십 톤에 이릅니다. 승용차 수십 대 분량입니다.
이 돌을 만든 사람들에게는 도르래도, 바퀴 달린 수레도, 쇠로 만든 도구도 없었습니다.
문제는 셋으로 나뉩니다
축조는 하나의 작업이 아니라 성격이 다른 세 단계입니다.
- 떼어 내기. 바위에서 원하는 크기로 잘라 냅니다.
- 옮기기. 채석한 곳에서 세울 자리까지 끌고 갑니다.
- 올리기. 받침돌 위에 얹습니다.
셋 중 어느 하나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각각 다른 방법이 필요합니다.
떼어 내기, 물과 나무를 씁니다
바위를 자르는 데 쇠 도구가 필요할 것 같지만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바위에는 원래 결이 있습니다. 그 결을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홈을 팝니다. 그 홈에 마른 나무 쐐기를 박고 물을 붓습니다.
마른 나무는 물을 먹으면 부풀어 오릅니다. 여러 개가 동시에 부풀면 바위가 결을 따라 갈라집니다.
실제로 채석지로 추정되는 곳에서 이런 홈의 흔적이 확인됩니다. 힘을 순간적으로 가하는 대신 시간을 들여 천천히 미는 방식입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낼 수 없는 크기의 힘을 나무가 대신 냅니다.

옮기기, 마찰을 줄입니다
무거운 물체를 끄는 데 드는 힘은 무게 자체가 아니라 바닥과의 마찰에서 옵니다. 그래서 마찰을 줄이면 같은 무게도 훨씬 적은 힘으로 움직입니다.
쓸 수 있었던 방법은 몇 가지입니다.
- 통나무를 깔고 그 위로 굴립니다. 미끄러지는 마찰이 구르는 마찰로 바뀌면 필요한 힘이 크게 줄어듭니다. 뒤로 빠져나온 통나무를 다시 앞에 놓기를 반복합니다.
- 썰매 형태의 받침에 얹습니다. 돌을 나무 틀에 묶어 하중을 분산시키고, 바닥이 파이는 것을 막습니다.
- 바닥에 물을 뿌리거나 진흙을 깝니다. 마찰이 더 줄어듭니다.
- 겨울에 옮깁니다. 언 땅은 단단하고 미끄럽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길을 먼저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돌을 끌기 전에 지나갈 자리를 고르고 다지는 작업이 선행됐을 것으로 봅니다. 준비가 실제 운반보다 오래 걸렸을 가능성이 큽니다.
올리기, 들지 않고 흙을 씁니다
가장 어려워 보이는 단계인데 실은 발상이 단순합니다. 들어 올리지 않습니다.
먼저 받침돌을 세웁니다. 그리고 그 주위에 흙을 쌓아 경사로를 만듭니다. 받침돌이 흙에 파묻힐 때까지 쌓습니다.
그다음 덮개돌을 그 경사로를 따라 끌어 올려 받침돌 위 자리에 놓습니다. 마지막으로 흙을 파냅니다. 흙이 사라지면 받침돌 위에 덮개돌이 얹힌 형태가 드러납니다.
이 방법의 이점은 분명합니다. 수직으로 들어 올리는 작업이 수평으로 끄는 작업으로 바뀝니다. 앞 단계에서 이미 쓰던 방법을 그대로 쓸 수 있습니다.
형태가 여러 가지인 이유
고인돌이라고 부르지만 생김새가 하나가 아닙니다. 크게 세 갈래로 나뉩니다.
- 판돌을 세워 방을 만들고 그 위에 덮개돌을 얹은 형태. 받침돌이 땅 위로 높이 드러나 탁자처럼 보입니다. 무덤방이 지상에 있습니다.
- 땅 아래에 무덤방을 두고 작은 받침돌 여럿 위에 덮개돌을 얹은 형태. 위에서 보면 바둑판처럼 보입니다.
- 받침돌 없이 덮개돌이 땅에 바로 놓인 형태. 무덤방은 아래에 있습니다.
이 차이가 지역과 시기에 따라 갈리는데, 여기서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 형태의 차이를 곧바로 문화 집단의 차이로 읽는 해석이 오래 통용됐지만, 지금은 그렇게 단순하게 보지 않습니다.
같은 지역에서 여러 형태가 함께 나오는 경우가 있고, 구할 수 있는 돌의 모양과 지형이 형태를 정한 측면도 있습니다. 크고 판판한 돌을 구할 수 있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에서 같은 형태가 나오기 어렵습니다.
즉 형태는 재료와 지형의 제약을 함께 반영한 결과이고, 그 위에 집단의 관습이 얹혀 있습니다. 어느 쪽이 얼마나 작용했는지는 유적마다 따로 따져야 합니다.
몇 명이 필요했는가
동원 인원을 추정하는 계산이 종종 인용됩니다. 무게 1톤당 몇 명 정도로 잡는 방식인데, 전제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집니다. 경사가 얼마인지, 마찰을 얼마나 줄였는지, 한 사람이 낼 수 있는 힘을 얼마로 보는지에 좌우됩니다.
그래서 구체적인 숫자보다 함의를 보는 편이 안전합니다. 어떤 계산을 쓰더라도 한 마을이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의 인력이 필요하다는 결론은 같습니다.
여기서 이 유적이 고고학에서 갖는 의미가 나옵니다. 이런 구조물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다음을 뜻합니다.
- 여러 집단을 동원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자리가 있었습니다.
- 그 인원을 먹일 수 있는 생산력이 있었습니다.
- 농사철을 피해 일정을 조율할 수 있었습니다.
즉 이 돌은 무덤이면서 동시에 당시 사회 조직에 대한 기록입니다.
실무로 옮겨 읽으면
- 어려운 동작을 쉬운 동작으로 바꾸는 것이 해법일 때가 있습니다. 들어 올리는 문제를 끄는 문제로 바꿨습니다. 새 도구를 만드는 대신 문제의 형태를 바꿨습니다.
- 가설 구조물은 사라지지만 결정적입니다. 흙 경사로가 없었다면 이 형태는 불가능했습니다. 남은 것만 보면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 시간을 들여 서서히 가하는 힘이 순간적인 힘을 대신합니다. 나무 쐐기가 그 예입니다.
- 준비 작업이 본 작업보다 클 수 있습니다. 길을 다지는 일이 돌을 끄는 일보다 오래 걸렸을 것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이 유적이 보여 주는 것은 강한 도구가 아니라 문제를 다시 정의하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그 방식을 실행할 만큼 사람을 모을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본 콘텐츠는 공개된 문화유산 자료와 고고학 연구를 바탕으로 한 해설입니다. 축조 방법은 실험고고학의 추정을 포함하며, 무게와 동원 인원 수치는 유적과 계산 전제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최종 확인일: 2026-08-22.
작성: Timonology 편집팀 — 사라진 가설물까지 셈에 넣습니다.
참고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의 고인돌 유적 정보
- 나무 쐐기의 팽창을 이용한 채석 방법과 채석지의 홈 흔적
- 통나무 굴림과 썰매를 이용한 운반에서 마찰 저감의 효과
- 흙 경사로를 이용해 덮개돌을 얹고 흙을 걷어 내는 축조 순서
- 탁자식, 바둑판식, 개석식의 형태 구분과 지형·재료 제약의 영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