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릉, 벽돌을 «눕혔다 세웠다» 번갈아 쌓아 아치를 만들었다
백제 무령왕릉은 흙이 아니라 벽돌로 쌓은 무덤입니다. 그런데 벽돌을 그냥 차곡차곡 쌓은 게 아니라, «눕힌 벽돌 네 장»과 «세운 벽돌 한 장»을 번갈아 반복했습니다. 이 규칙적인 반복이 결국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터널형 아치 천장을 만들어 냈습니다.
백제 무령왕릉은 흙이 아니라 벽돌로 쌓은 무덤입니다. 그런데 벽돌을 그냥 차곡차곡 쌓은 게 아니라, «눕힌 벽돌 네 장»과 «세운 벽돌 한 장»을 번갈아 반복했습니다. 이 규칙적인 반복이 결국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터널형 아치 천장을 만들어 냈습니다.
종묘 정전은 처음부터 지금 모습으로 지어진 건물이 아닙니다. 태조 때 7칸으로 시작해, 모실 신위가 늘어날 때마다 «건물 전체를 다시 짓는» 대신 «옆으로 칸을 이어 붙이는» 방법을 세 차례 반복해 19칸이 됐습니다. 그 반복이 가능했던 이유를 정리했습니다.
경복궁 경회루는 연못 한가운데 섬 위에 지어진 2층 누각입니다. 그런데 1층을 이루는 것은 나무 기둥이 아니라 돌기둥 마흔여덟 개입니다. 게다가 바깥쪽 스물네 개는 네모나고 안쪽 스물네 개는 둥급니다. 왜 이런 구분을 뒀는지 정리했습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돌로 지었지만 목탑을 짓듯 부재를 짜 맞춘 백제의 석탑입니다. 2009년 해체 도중 심주석 사리공에서 나온 금제사리봉영기 한 장이, 추정에 머물던 건립연도를 «己亥年(639년)»으로 못박았습니다. 돌을 나무처럼 다룬 방식과, 유물 한 장이 연대를 확정한 과정을 살펴봅니다.
안동 봉정사 극락전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꼽힙니다. 그런데 이 건물이 «언제 지어졌는지» 직접 적어 둔 기록은 없습니다. 1972년 해체공사 중 나온 묵서명 한 줄 — «1363년에 지붕을 크게 고쳤다»는 기록 — 이 건립 연도를 거꾸로 추정하는 단서가 됐습니다. 어떻게 «고친 날짜»로 «지은 날짜»를 알아냈는지 짚어 봅니다.
보은 법주사 팔상전(국보 55호)은 우리나라에 국가지정문화재로 남은 유일한 목탑입니다. 1층부터 5층까지 건물을 관통하는 기둥 하나(심주)와, 위로 갈수록 눈에 띄게 좁아지는 층별 규모가 이 건물을 지금까지 서 있게 한 두 축입니다. 2013년 지붕 해체조사에서 드러난 약점까지 함께 짚어 봅니다.
경주 동궁과 월지(안압지)의 서쪽 호안에는 높이가 저마다 다른 배수공 4개가 뚫려 있습니다. 잠그고 여는 장치 없이, «구멍의 높이»만으로 연못의 최고 수위를 정해 놓은 구조입니다. 1978년 발굴조사보고서와 후속 논문으로 이 수리시설을 따라가 봅니다.
1455~1468년 사이 조선의 의관 전순의가 쓴 «산가요록»에는 겨울에 채소를 기르는 온실 짓는 법이 나옵니다. 유리 한 장 없이 기름 먹인 한지와 온돌만으로, «난방 온실» 기준 독일 하이델베르크 온실(1619)보다 앞서 난방·가습·채광을 동시에 해결한 구조입니다.
커다란 흙더미를 쌓아 두면 시간이 지날수록 빗물에 깎이고 흘러내립니다. 조선 왕릉의 봉분은 관리와 보수를 거치며 수백 년째 그 자리를 지켜 왔습니다. 흙을 «막는» 장치와 물을 «돌리는» 장치, 두 가지가 따로 맡은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한양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입니다. 비가 오면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빠져나갈 통로는 도성을 가로지르는 개천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이 개천은 시간이 지날수록 «바닥이 높아졌습니다». 왜 파내는 일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는지를 토목 문제로 정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