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에 전시된 조선시대 보신각 동종

소리가 사라지지 않게 만드는 설계 — 한국 범종의 맥놀이와 주조 공학

참고자료 · 자료 시점
핵심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성덕대왕신종」(E0029268) — 771년 완성·제원·소장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범종」(E0022598) — 용뉴·음통 등 한국 범종의 형식 요소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성덕대왕신종」(국보) · 국립경주박물관 소장·전시 해설 · 맥놀이(두 근접 진동수의 간섭)는 확립된 음향학 원리
자료 시점 — 8세기 유물 + 현대 음향·재료 분석 논의
정리 — Timonology 편집팀 · 2026.7

큰 종을 한 번 치면 소리가 곧바로 잦아들지 않는다. 특히 한국 범종의 소리는 길게 남는데, 그냥 길기만 한 것이 아니라 여운 속에서 소리의 크기가 커졌다 작아지기를 반복한다. 웅웅거리며 밀려왔다 물러가는 그 파동을 우리는 맥놀이라고 부른다.

이 현상이 흥미로운 것은 원인 때문이다. 맥놀이는 종을 아주 정밀하게 만들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종이 완벽한 대칭이 아니기 때문에 생긴다. 제작의 정밀도를 높이는 방향으로만 밀고 나갔다면 사라졌을 특성이, 미세한 어긋남 덕분에 남았다.

한국 종의 얼굴 — 용뉴와 음통, 그리고 명동

한국 범종에는 다른 지역의 종과 구별되는 형식 요소들이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꼭대기다. 종을 매달기 위한 고리를 용의 모습으로 만든 용뉴(龍鈕)가 얹혀 있고, 그 옆에 대롱 모양의 관이 하나 더 서 있다. 음통(音筒), 또는 용통이라 부르는 이 관은 중국이나 일본 종에서는 볼 수 없는 한국 종 고유의 요소다.

음통의 기능에 대해서는 오래 논의가 이어져 왔다. 종 내부와 통해 있어 귀에 거슬리는 높은 주파수 성분을 밖으로 빼내고 소리를 부드럽게 만든다는 설명이 널리 소개되지만, 이는 여러 해석 가운데 하나다. 실제로는 상징적·의례적 장치였다는 견해, 주조 공정상의 필요에서 비롯됐다는 견해도 함께 제기되어 왔다. 정설로 확정되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해두는 편이 정확하다. 종마다 음통의 내부 구조와 관통 여부가 같지 않다는 점도 단일한 결론을 어렵게 만든다.

두 번째 요소는 종 아래에 있다. 종을 매단 자리 밑의 땅을 우묵하게 파 만든 울림통, 명동(鳴洞)이다. 종에서 나온 소리가 이 빈 공간에서 반사되어 되돌아오면서 저음의 잔향을 보태준다는 설명이 통용된다. 종을 지면에 바짝 낮게 매다는 한국식 걸이 방식과 짝을 이루는 장치다.

세 번째는 몸체의 곡선이다. 서양 종은 아래로 갈수록 나팔처럼 밖으로 벌어지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한국 종은 반대로 아래쪽에서 살짝 안으로 오므라든다. 종구(鐘口)의 형태가 다르면 진동하는 방식과 방출되는 소리의 성격도 달라진다. 겉모습의 차이로 보이는 것이 실제로는 음향 설계의 차이인 셈이다.

치는 방식도 다르다. 서양 종은 안쪽에 매단 추가 종의 안벽을 때리는 구조이고, 종 자체를 흔들어 소리를 내는 경우가 많다. 한국 범종은 종을 고정해 두고 바깥에서 당목(撞木)이라 부르는 통나무를 밀어 옆면을 친다. 치는 자리도 정해져 있다. 종 몸체에 연꽃 모양 등으로 새겨진 당좌(撞座)가 그 자리를 표시한다.

이것은 장식이 아니라 기능이다. 종의 진동 모드는 어느 지점을 때리느냐에 따라 어떤 성분이 강하게 살아나는지가 달라진다. 늘 같은 자리를 치면 같은 소리가 재현되고, 타격 지점이 한 곳으로 고정되므로 그 부위의 두께를 미리 설계에 반영할 수도 있다. 무거운 당목을 천천히 밀어 넓은 면적으로 때리는 방식은 날카로운 타격음 대신 낮고 깊은 소리를 끌어내는 데 유리하다.

맥놀이 — 하나의 음이 둘로 갈라질 때

맥놀이의 원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진동수가 아주 가까운 두 소리가 동시에 울리면, 두 파동이 어떤 순간에는 서로 보태고 어떤 순간에는 서로 상쇄한다. 그 결과 귀에 들리는 소리의 크기가 주기적으로 커졌다 작아진다. 이것이 맥놀이(beat)다.

주기는 계산이 된다. 맥놀이의 주기는 두 진동수 차이의 역수다. 두 소리의 진동수가 0.3Hz 차이라면 맥놀이 주기는 약 3.3초가 된다. 차이가 클수록 웅웅거림이 빨라지고, 차이가 작을수록 느리고 길게 늘어진다.

그렇다면 종 하나에서 어떻게 두 개의 진동수가 나오는가. 여기서 대칭의 문제가 등장한다. 이상적으로 완벽한 축대칭 종이라면, 특정 진동 모드는 종을 어느 방향으로 잘라 보아도 똑같이 나타나므로 단 하나의 진동수를 가진다. 그런데 실제 종은 완벽하게 대칭일 수 없다. 두께가 자리마다 미세하게 다르고, 문양이 새겨진 곳과 아닌 곳의 질량 분포가 다르며, 주조 과정의 수축도 균일하지 않다.

이 미세한 비대칭 때문에 원래 하나였던 진동 모드가 서로 아주 가까운 두 개의 고유진동수로 갈라진다. 두 소리가 함께 울리면서 간섭이 일어나고, 그것이 맥놀이로 들린다. 결함처럼 보이는 비대칭이 소리의 개성을 만든 것이다.

성덕대왕신종, 흔히 에밀레종이라 불리는 종은 이 긴 맥놀이로 널리 알려져 있다. 맥놀이 주기가 약 3초 안팎으로 소개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측정 위치와 타종 조건, 분석 방법에 따라 값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약’이라는 단서를 떼지 않는 편이 맞다. 진동 모드의 차수나 각 성분의 정확한 주파수 같은 세부 수치는 개별 측정 연구의 영역이며, 널리 인용되는 하나의 값으로 고정해 말하기 어렵다.

고려 시대 청동 범종
천흥사 동종(1010년). 고려 초기 범종으로 신라 이래의 형식을 이어받았다. 사진: Gary Todd / Wikimedia Commons (CC0)

청동 덩어리를 한 번에 붓는다는 일

소리 이전에 물건이 있어야 한다. 범종은 구리에 주석을 섞은 청동으로 만든 대형 주물이다. 성덕대왕신종은 771년에 완성됐고 무게는 약 18.9톤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만한 크기의 금속 덩어리를 통째로 부어내는 일은 그 자체가 상당한 공정 관리 문제다.

첫 번째 난관은 쇳물의 양이다. 당시의 도가니 하나로 18톤이 넘는 청동을 한꺼번에 녹일 수는 없다. 여러 개의 도가니에서 각각 녹인 쇳물을 거의 동시에 부어야 하는데, 온도가 다르거나 시차가 생기면 먼저 들어간 쇳물이 굳기 시작하면서 경계면에 결함이 남는다. 여러 팀의 작업을 초 단위로 맞춰야 하는 일이다.

두 번째는 미충전과 기포다. 쇳물이 주형 구석까지 도달하기 전에 식으면 그 부분이 채워지지 않는다. 반대로 너무 빠르게 부으면 공기가 말려 들어가 내부에 기포가 남는다. 기포는 겉에서 보이지 않지만 진동을 왜곡하고, 심하면 타종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균열의 출발점이 된다.

세 번째는 냉각 수축이다. 금속은 굳으면서 부피가 줄어드는데, 두꺼운 부분과 얇은 부분이 다른 속도로 식으면 내부에 응력이 남는다. 종은 두께가 자리마다 다르도록 설계된 물건이라 이 문제를 피할 수 없다. 앞서 본 미세한 비대칭도 상당 부분 여기서 비롯된다.

합금 배합도 변수다. 구리에 주석을 얼마나 섞느냐에 따라 물성이 달라진다. 주석 비율이 높아지면 단단해지고 소리가 밝아지는 쪽으로 가지만 동시에 잘 깨지는 성질도 함께 커진다. 낮으면 반대로 질기지만 소리가 무뎌진다. 게다가 배합비는 녹는 온도와 쇳물의 흐름성까지 좌우하므로, 소리만 보고 정할 수도 없고 주조 편의만 보고 정할 수도 없다. 소리와 제작 가능성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는 일이었다.

주형을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린다. 밀랍으로 원형을 만든 뒤 녹여내고 그 자리에 쇳물을 붓는 밀랍주조법이었다는 설명과, 모래나 흙을 다져 만든 거푸집을 쓰는 사형(砂型) 주조였다는 설명이 함께 제시되어 왔다. 종의 표면에 남은 흔적, 문양의 표현 방식, 실험적 재현 결과 등이 근거로 동원되지만 아직 한쪽으로 정리되지 않았다. 두 방식이 부위별로 혼용됐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에밀레 전설에 대하여

성덕대왕신종에는 아이를 쇳물에 넣어 종을 완성했다는 이야기가 따라붙는다. 종소리가 ‘에밀레’로 들린다는 설명과 함께 널리 퍼진 전설이다.

이 이야기는 성분 분석으로 검증이 시도된 바 있다. 사람의 뼈에는 인(P)이 상당량 포함되어 있으므로, 인체가 주입됐다면 합금 성분에 흔적이 남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분석에서 인 성분은 검출되지 않았고, 전설을 뒷받침할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대형 주조의 성공을 기원하는 제의적 서사가 후대에 이야기로 굳어진 것으로 보는 편이 합리적이다.

전설을 걷어내고 나면 오히려 더 흥미로운 사실이 남는다. 이 종이 완성되기까지 여러 대에 걸쳐 시도가 이어졌다는 점, 그리고 그 사정이 종에 새겨진 명문과 문헌에 흔적을 남겼다는 점이다. 18톤짜리 주물을 성공시키기까지 실제로 몇 번의 실패가 있었다면, 그 자체가 전설보다 더 구체적인 공학의 이야기다.

전설이 오래 살아남은 이유도 짐작할 만하다. 대형 주조는 결과를 미리 알 수 없는 작업이었다. 쇳물을 붓고 주형을 식힌 뒤 깨뜨려 열기 전까지는 성공인지 실패인지 알 수 없고, 실패하면 몇 달의 준비와 막대한 재료가 한꺼번에 사라진다. 통제할 수 없는 변수 앞에서 사람들이 이야기를 만들어 붙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그 이야기를 기술사의 사실로 옮겨 적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형식은 어떻게 이어졌나

한국 범종의 형식은 통일신라에서 자리를 잡고 고려와 조선으로 이어졌다. 현존하는 가장 이른 시기의 신라 범종으로는 상원사 동종이 꼽히고, 성덕대왕신종이 그 뒤를 잇는다. 고려 시기의 천흥사 동종(1010년)은 용뉴와 음통, 몸체의 문양대 구성에서 신라 이래의 얼개를 그대로 계승한 사례로 읽힌다.

조선으로 넘어오면 변화가 나타난다. 1468년에 주조된 보신각 동종처럼, 몸체의 비례와 문양 구성에서 이전 시기와 다른 흐름이 보이는 종들이 등장한다. 시대마다 종을 만든 주체와 용도가 달랐고, 그에 따라 형태의 강조점도 이동했다. 다만 용뉴 옆의 음통이라는 특징적 요소는 오래 유지됐다.

실무 적용 — 지금 어디서 확인할 수 있나

  • 성덕대왕신종은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본다 — 종은 야외 전각에 걸려 있어 형태를 사방에서 관찰할 수 있다. 보존을 위해 실제 타종은 제한되므로, 소리는 박물관이 제공하는 녹음 자료로 듣는 것이 일반적이다. 타종 행사 여부는 방문 전 확인해야 한다.
  • 음통은 위에서부터 훑어본다 — 관람할 때 용뉴와 그 옆의 대롱을 먼저 찾아보면 한국 종과 다른 지역 종의 차이가 한눈에 잡힌다. 종마다 음통의 굵기와 마감이 다르다는 점도 함께 눈여겨볼 만하다.
  • 여러 시대의 종을 나란히 비교한다 —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보신각 동종을 비롯한 여러 시기의 범종이 있다. 신라·고려·조선의 종을 이어서 보면 형식이 어떻게 유지되고 어디서 갈라졌는지가 보인다.
  • 명동은 종 아래를 살펴야 보인다 — 종만 보고 지나치기 쉽지만, 걸려 있는 위치와 지면의 관계가 소리 설계의 일부다. 종 아래에 파인 공간이 있는지, 종구가 지면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확인해 보자.
  • 맥놀이는 지금도 쓰이는 개념이다 — 악기 조율에서 두 음의 웅웅거림이 사라지는 지점을 맞추는 방식, 회전 기계의 진동 진단에서 근접한 두 주파수를 구분하는 방식이 모두 같은 원리다. 종의 여운과 기계 진단이 하나의 물리로 이어진다.
  • 수치를 인용할 때는 조건을 함께 적는다 — 종의 맥놀이 주기나 주파수 값은 측정 위치와 타격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출처와 측정 조건 없이 숫자만 옮기면 그 순간부터 근거가 사라진다.

큰 종은 정밀하게 만들어야 하는 물건이지만, 완벽하게 대칭으로 만들어졌다면 지금과 같은 소리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균일하지 않은 두께, 새겨 넣은 문양, 굳으면서 생긴 미세한 뒤틀림이 하나의 음을 둘로 갈라놓았고, 그 둘이 서로를 밀고 당기며 여운을 만들었다. 이 악기의 특징은 오차를 없앤 자리가 아니라 오차를 품은 자리에서 나왔다.

성덕대왕신종의 완성 연도와 무게, 소장처는 널리 통용되는 서술을 따랐으며 무게는 자료에 따라 소수점 이하가 다르게 표기되기도 합니다. 음통의 기능, 주형 제작 방식(밀랍주조 대 사형주조)은 학계에서 견해가 갈리는 사안이라 본문에서 단정하지 않았습니다. 진동 모드별 주파수 등 세부 수치는 개별 측정 연구를 직접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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