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그려서 글자를 만들었다 — 훈민정음 창제의 음성학적 설계
세상의 문자 대부분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되어 간» 것입니다. 그림에서 출발해 오랜 시간에 걸쳐 닳고 줄어들며 지금 모양이 됐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문자에는 «왜 이 모양인가»에 대한 답이 없습니다. 답이 있더라도 후대의 추정입니다.
훈민정음은 여기서 예외입니다. 만든 사람들이 설계 의도를 문서로 남겼습니다. 그 문서가 해례본이고, 이 글은 그 안에 적힌 설계 원리를 공학 문서 읽듯이 따라가 보려는 것입니다.
자음 — 발음할 때의 «모양»을 본떴다
해례본은 자음의 기본 다섯 글자가 각각 어디를 본떴는지 밝힙니다.
| 글자 | 본뜬 대상 |
|---|---|
| ㄱ |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 |
| ㄴ | 혀끝이 윗잇몸에 닿는 모양 |
| ㅁ | 입의 모양 |
| ㅅ | 이의 모양 |
| ㅇ | 목구멍의 모양 |
⇒ ★즉 글자의 형태가 소리를 내는 신체 부위의 형태에서 왔습니다. 소리와 모양 사이에 임의의 약속이 아니라 물리적 대응이 있습니다.
직접 해보시면 이해가 빠릅니다. «ㄱ»과 «ㄴ»을 발음하면서 혀가 어디에 있는지 느껴 보십시오. 글자의 꺾인 방향과 혀의 방향이 대응합니다.

획을 더하면 소리가 세진다
기본 다섯 글자에서 나머지가 파생되는 방식은 더 인상적입니다. 획을 하나 더하면 소리가 한 단계 세집니다.
- ㄴ → ㄷ → ㅌ
- ㅁ → ㅂ → ㅍ
- ㅅ → ㅈ → ㅊ
- ㅇ → ㆆ → ㅎ
⇒ 같은 자리에서 나는 소리끼리는 모양이 닮아 있고, 세기 차이는 획 수로 표시됩니다.
이것이 실용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글자의 생김새만 봐도 그 소리가 어느 계열에 속하고 얼마나 센지 알 수 있습니다. 배우는 사람은 스물여덟 개를 각각 외우는 것이 아니라, 다섯 개와 규칙 하나를 익히면 됩니다.
모음 — 세 개의 요소를 조합한다
모음은 다른 원리로 만들어졌습니다. 기본이 되는 세 요소가 있습니다.
- · — 둥근 것
- ㅡ — 평평한 것
- ㅣ — 서 있는 것
이 셋을 조합해 나머지를 만듭니다. ㅗ ㅏ ㅜ ㅓ는 «·»가 «ㅡ»나 «ㅣ»의 어느 쪽에 붙느냐로 갈리고, 하나 더 붙이면 ㅛ ㅑ ㅠ ㅕ가 됩니다.
⇒ 자음은 «본뜨기», 모음은 «조합» — 두 개의 서로 다른 설계 원리가 한 문자 체계 안에 함께 있습니다.
그리고 «모아쓰기»라는 결정
낱자를 만든 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배열할 것인가가 남습니다.
훈민정음은 낱자를 옆으로 줄줄이 늘어놓지 않고 음절 단위로 네모 안에 모아 쓰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이 결정의 결과는 뚜렷합니다.
- 읽을 때 음절 경계가 눈에 바로 보입니다. 어디서 끊어 읽을지 판단할 필요가 없습니다.
- 당시 함께 쓰이던 한자와 크기가 맞습니다. 섞어 쓰는 문서에서 줄이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 대신 낱자 조합의 수만큼 글자꼴이 필요해집니다. 이 부담은 훗날 인쇄와 타자기, 그리고 전산화 단계에서 계속 문제로 돌아왔습니다.
★즉 모아쓰기는 읽는 쪽의 편의를 위해 만드는 쪽의 부담을 감수한 결정입니다. 어느 쪽을 택할지는 지금도 문자 설계에서 갈리는 문제입니다.
설계 문서가 남았다는 것의 무게
해례본이 갖는 의의는 문자 자체와 별개로 하나 더 있습니다. 의도가 기록으로 남았다는 것입니다.
이 문서가 없었다면 «ㄱ이 혀뿌리 모양이다»는 후대의 그럴듯한 해석 중 하나로 남았을 것입니다. 실제로 해례본은 오랫동안 소재가 알려지지 않다가 20세기에 발견됐고, 그 전까지는 창제 원리를 두고 여러 억측이 있었습니다.
⇒ 만든 물건과 만든 이유를 함께 남기는 것. 이것이 기술 문서의 본질이고, 훈민정음은 그 드문 사례입니다.
반대가 있었다 — 문자는 기술 문제만이 아니다
설계가 정교했다고 해서 도입이 순조로웠던 것은 아닙니다. 반포 전후로 반대 상소가 올라왔습니다.
반대의 논지를 오늘의 언어로 옮기면 대체로 이렇습니다.
- 호환성 문제 — 이미 한자라는 통용 체계가 있는데 별도 체계를 만들면 기존 축적과 단절된다.
- 표준의 권위 — 주변국이 공유하는 문자 체계에서 이탈하는 것은 외교적으로 부담이다.
- 접근성의 역설 — 배우기 쉬운 문자는 아무나 글을 쓰게 만든다. 이것을 이점으로 볼지 위험으로 볼지가 갈렸습니다.
⇒ ★세 번째가 이 논쟁의 핵심입니다. «쉽다»는 성질이 곧 반대의 이유였습니다. 기존 체계에서 문해력은 소수의 자격이었는데, 그 문턱을 낮추는 일은 자격의 값어치를 떨어뜨립니다.
새 표준을 도입할 때 반발이 «성능»이 아니라 «그 성능이 기존 질서에 무엇을 하는가»에서 나오는 일은 지금도 반복됩니다.
실무로 옮겨 읽으면
- 형태에 정보를 담으면 외울 것이 줄어듭니다. 비슷한 소리를 비슷한 모양으로 만든 결정이 학습 부담을 몇 분의 일로 줄였습니다. 규칙이 형태에 드러나 있으면 사용자는 규칙을 따로 외우지 않습니다.
- 확장 규칙을 먼저 정해 두십시오. 「획을 더하면 세진다」는 새 글자가 필요할 때 어떻게 만들지까지 정해 둔 것입니다. 나중에 늘어날 것을 예상한 설계입니다.
- 읽는 쪽과 만드는 쪽의 부담은 맞바꿔집니다. 모아쓰기는 이 교환을 명확히 보여 줍니다. 어느 쪽을 우선할지는 정답이 없고, 선택입니다.
- 설계 문서를 남기십시오. 물건은 남아도 이유는 남지 않습니다. 500년 뒤에 «왜 이렇게 만들었나»에 답할 수 있는 것은 문서뿐입니다.
훈민정음이 특별한 이유는 «독창적인 문자»여서만이 아닙니다. 소리를 관찰하고, 규칙을 세우고, 그 규칙을 적어 남긴 일련의 과정이 통째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본 콘텐츠는 『훈민정음』 해례본과 공개된 국어학 연구를 바탕으로 한 해설입니다. 창제 과정과 참여 인물에 대해서는 연구자마다 견해가 갈리는 부분이 있으므로, 본문은 해례본에 명시된 내용을 중심으로 서술했습니다. 최종 확인일: 2026-08-10.
작성: Timonology 편집팀 — 물건과 함께 남은 문서를 읽습니다.
참고
- 『훈민정음』 해례본 제자해
- 훈민정음 자형과 조음기관 대응에 관한 국어학 연구
- 『세종실록』 훈민정음 관련 기사
- 국립한글박물관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