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불국사 석가탑

무구정광대다라니경, 폭 5.4센티 두루마리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인 이유

참고자료 · 자료 시점
핵심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무구정광대다라니경」 항목 — 발견 경위·크기·재질·인쇄 연대 추정 근거, 국가유산포털, 국보 「불국사 삼층석탑 사리장엄구」 상세 — 무구정광대다라니경 포함 일괄 지정 정보
자료 시점 — 1966년 발견 기록 + 후속 학술 연구
정리 — Timonology 편집팀 · 2026.9

1966년 10월 13일, 경주 불국사 석가탑을 보수하려고 해체하던 중이었습니다. 탑의 2층 탑신부에 봉안돼 있던 금동제 사리외함 속에서, 다른 사리 장엄구와 함께 작은 두루마리 하나가 나왔습니다. 폭 5.4cm 남짓한 이 종이 두루마리가 지금은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로 불립니다.

탑 속에 넣으려고 «가늘고 길게» 만든 책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폭 53~55mm, 길이 약 620cm(복원 후 642cm)에 이르는 두루마리입니다. 너비 65~67mm의 종이 12장을 이어 붙여 이만큼 긴 두루마리를 만든 뒤, 지름 약 4cm의 붉은 나무 기둥에 말아 두었습니다. 재질은 신라의 전통 한지, 즉 닥나무 껍질로 뜬 닥종이입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복제품, 인천공항 한국문화박물관
⚠️1966년 발견된 원본이 아니라, 인천공항 한국문화박물관에 전시된 복제품입니다. 세로로 이어진 한자 경문이 목판으로 찍힌 두루마리 형태를 실제로 보여 준다는 점에서, 앞서 소개한 «폭이 좁고 긴 두루마리»가 실제로 어떤 모습인지 가장 가깝게 확인할 수 있는 사진입니다. 사진: Daderot / Wikimedia Commons (CC0)

⇒ ★폭이 5cm 남짓으로 좁은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 인쇄물은 애초에 사람이 펼쳐 읽으라고 만든 것이 아니라, 탑 안의 좁은 사리공에 넣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읽기 편한 크기가 아니라 «보관할 공간의 치수»에 맞춰 형태를 결정한 인쇄물인 셈입니다.

«어떻게» 찍었는가 — 목판에 먹을 칠하고 종이를 문질렀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원문 자체도 출처가 분명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이 경문은 도화라국(都貨邏國)의 승려 미타산(彌陀山)이 법장(法藏)과 함께 당나라 무주(武周) 말년인 장안 연간(長安年間, 701~704년)에 한문으로 번역한 것입니다. 본문은 한 행마다 6~9자씩 새겨져 있습니다.

⇒ ★인쇄 방식도 구체적으로 전해집니다. 목판의 «글자 면을 위쪽으로» 향하게 놓고 먹을 칠한 뒤, 그 위에 종이를 얹고 말총(말의 갈기·꼬리털) 같은 도구로 문질러 찍어냈습니다. 지금의 인쇄기처럼 압착하는 방식이 아니라, «손으로 문질러 눌러 찍는» 수작업이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찍어낸 낱장들을 이어 붙여 두루마리로 장정한 것이 지금 남은 형태입니다.

1,200년을 버틴 재료 — 닥종이

이 두루마리가 지금까지 관심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내용»이 아니라 «버텨낸 시간»입니다. 탑 속이라는, 빛은 들지 않지만 습도와 온도 변화에는 노출될 수밖에 없는 공간에서 1,200년 넘게 형체를 유지했습니다. 이는 신라 닥종이의 내구성을 보여 주는 실물 증거로 꼽힙니다. 발견 이후 진행된 수리에는 원지보다 폭과 길이가 약간 큰, 마찬가지로 아주 얇은 닥종이가 배접용으로 쓰였습니다.

⇒ 종이의 수명을 실험실에서 가속 열화 시험으로 추정할 수도 있지만, 이 유물은 «실제로 1,200년을 견딘 표본»이라는 점에서 어떤 실험보다 직접적인 증거입니다. 재료의 내구성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결국 «오래 버틴 실물이 남아 있는가»입니다.

몇 년에 찍었는지, 글자체로 알아내다

이 인쇄물이 정확히 언제 찍혔는지 적어 둔 문장은 없습니다. 대신 학계는 두 가지 간접 증거로 연대를 추정합니다. 첫째, 쓰인 서체가 통일신라시대에 등장한 양식이라는 점. 둘째, 측천무후 집권기(무주武周)에 만들어져 쓰인 특수한 한자인 «무주제자(武周制字)»가 본문에 나온다는 점입니다. 무주제자는 쓰인 시기가 제한적인 글자이므로, 이 글자가 있다는 것 자체가 인쇄 시기의 상한선을 알려줍니다.

⇒ ★여기에 더해, 탑을 1024년에 다시 손보며 남긴 중수기(重修記)에 탑의 애초 조성 시기를 «742년(천보 원년)»으로 적어 둔 기록이 있습니다. 탑이 지어질 때 이 다라니경도 함께 봉안됐을 것으로 보는 통설에 따르면, 인쇄 시기는 742년 이전으로 좁혀집니다. 글자체(양식 비교), 특수 글자의 사용 시기(문자 자체가 주는 시간 정보), 후대의 중수 기록(탑 자체의 역사)까지 세 갈래 증거를 겹쳐 연대를 추정한 것입니다.

«세계 최고» 타이틀의 정확한 근거

이 인쇄물과 자주 비교되는 것이 일본 호류지에서 나온 『백만탑다라니』입니다. 다만 학계가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더 앞선 «완전한» 목판인쇄물로 꼽는 근거는 단순히 «더 오래됐다»가 아닙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백만탑다라니』를 «근본·자심인·상륜·육도의 다라니 4종만을 발췌해 장단 2종으로 나눠 조그마한 나뭇조각에 새겨 날인한 낱장의 인쇄물»로 설명합니다. 반면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경문 전체를 빠짐없이 새겨 «두루마리»로 장정했다는 점이 핵심적인 차이로 꼽힙니다.

⇒ ⚠️«가장 오래된 것»과 «가장 완전한 것»은 다른 기준입니다. 이 인쇄물이 «세계 최고» 타이틀을 받는 것은 단순히 연대가 앞서서가 아니라, «경문 전체를 온전히 새긴 인쇄물»이라는 형식적 완전성까지 같이 인정받았기 때문이라는 점을 밝혀 둡니다.

실무 적용 — 증거는 «겹칠수록» 단단해진다

  • ★★하나의 증거만으로 연대·기원을 단정하지 말고, 서로 다른 성격의 증거를 겹쳐 확인하십시오. 이 유물의 연대는 서체 비교, 특수 문자의 사용 시기, 별도 문헌(중수기) 기록이라는 세 갈래 증거가 같은 방향을 가리켜서 신뢰를 얻었습니다.
  • ★보관·운반 조건이 형태 자체를 결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두루마리의 좁은 폭은 «읽기 편의»가 아니라 «탑 속에 넣을 크기»가 만든 결과입니다. 완성물의 형태를 볼 때 «무엇에 맞춰 그 형태가 됐는가»를 먼저 물어야 합니다.
  • «최초»와 «최고(最古)»와 «최선(가장 완전함)»을 구분해 말하십시오. 이 유물의 지위는 이 세 기준이 겹쳐서 만들어진 것이지, 한 기준만으로 붙은 타이틀이 아닙니다.

정리하면

  •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폭 53~55mm, 길이 약 620cm의 닥종이 두루마리로, 1966년 불국사 석가탑 해체 중 사리장엄구와 함께 발견됐습니다.
  • 서체 양식, 무주제자의 사용 시기, 탑의 1024년 중수기에 남은 «742년 조성» 기록을 겹쳐 인쇄 시기를 742년 이전으로 추정합니다.
  • ⇒ «세계 최고 목판인쇄물»이라는 평가는 연대만이 아니라, 경문 전체를 빠짐없이 새긴 «완전한» 인쇄물이라는 점까지 함께 인정받은 결과입니다.

본 콘텐츠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과 국가유산포털의 국보 지정 정보를 정리한 해설입니다. 폭 수치는 자료에 따라 5.3~5.5cm, 6.6cm 등으로 다르게 표기되는데, 이번 원고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 제시한 53~55mm를 대표값으로 썼습니다. 일본 『백만탑다라니』의 정확한 인쇄 범위·형식에 대한 일본 측 1차자료까지는 확인하지 못해, 국내 학계의 비교 평가만 소개했습니다. 최종 확인일: 2026-09-17.

작성: Timonology 편집팀 — «가장 오래됐다»와 «가장 완전하다»가 겹쳐야 비로소 «세계 최고»가 된다는 관점으로 읽었습니다.

참고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무구정광대다라니경」
  • 국가유산포털, 국보 「불국사 삼층석탑 사리장엄구」

관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