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 정전, 신위가 늘 때마다 «옆으로» 늘려 지었다 — 7칸에서 19칸이 된 건물
큰 건물을 짓고 나서 «칸을 몇 개 더 늘려야겠다»는 상황이 생기면 보통 골치가 아픕니다. 기존 건물을 헐고 다시 짓거나, 옆에 안 어울리는 별채를 붙이게 되기 쉽습니다. 그런데 서울 종묘의 정전(正殿)은 이런 증축을 «세 번»이나 겪고도 처음 지어진 건물처럼 하나로 이어져 있습니다. 지금의 19칸짜리 건물은 원래 7칸이었습니다.
처음엔 7칸, 지금은 19칸
종묘 정전은 1395년(태조 4) 경복궁·사직단과 함께 완공됐습니다. 이때 규모는 7칸이었고, 그중 5칸에 태조의 4대 조상 신위를 모셨습니다.
⇒ 그 뒤로 이 건물은 조금씩 늘어났습니다. 명종 원년에 4칸을 늘려 11칸이 됐고(첫 번째 증축), 1592년 임진왜란으로 완전히 불탄 뒤 1608년 «불타기 전과 같은 규모(11칸)»로 «중건»됐습니다(칸수를 더 늘린 것은 아닙니다). 이후 영조 2년(1726)에 4칸(두 번째 증축)을, 헌종 2년(1836)에 다시 4칸(세 번째 증축)을 늘려 지금의 19칸이 됐습니다. 400년 넘는 시간 동안 세 차례에 걸쳐 늘어난 셈입니다.

왜 «옆으로」만 늘렸을까
건물을 키우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층을 올릴 수도 있고, 앞뒤로 넓힐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종묘 정전은 매번 «옆으로» 칸을 붙이는 방식만 썼습니다.
⇒ ★★이 건물의 용도를 생각하면 이 방향이 유일한 답에 가까웠습니다. 정전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는 사당이고, 신위 하나하나는 «독립된 칸»에 모셔집니다. 신위가 늘어난다는 것은 곧 «같은 폭·같은 구조의 칸이 하나 더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위로 층을 올리면 아래 칸에 모신 신위 위에 다른 신위를 얹는 모양이 돼 위계상 맞지 않고, 앞뒤로 넓히면 각 신위가 나란히 놓인다는 정전의 기본 형식 자체가 깨집니다. «옆으로 이어 붙이는» 것만이 기존 신위의 배치와 위계를 흩트리지 않고 자리를 늘리는 방법이었습니다.
같은 «칸»을 반복했기 때문에 이어 붙일 수 있었습니다
옆으로 늘리는 방법을 선택했다고 해서 자동으로 잘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정전의 각 칸이 저마다 다른 폭·다른 장식을 가진 건물이었다면, 칸을 추가할 때마다 기존 칸과 새 칸 사이에 어색한 이음매가 생겼을 것입니다.
⇒ ★정전의 칸들은 처음부터 같은 폭·같은 기둥 간격·같은 지붕 높이로 설계돼 있습니다. 신위를 모신다는 같은 기능을 반복하는 건물이다 보니, 화려한 장식으로 각 칸을 차별화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이런 «반복 가능한 단위(모듈)» 구조였기 때문에, 새 칸을 기존 칸 옆에 잇기만 하면 처마선과 기둥 열이 하나로 계속 이어졌습니다. 400년에 걸쳐 세 번 늘어난 건물인데도 지금 보면 «처음부터 하나로 지어진 건물»처럼 보이는 이유입니다.
증축 대신 «다른 건물»을 택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종묘가 신위를 더 모실 공간이 필요할 때 «정전을 늘리는» 방법만 쓴 것은 아닙니다. 1421년(세종 3), 정종의 신위를 모실 자리가 마땅치 않자 정전 서쪽에 «영녕전»이라는 별도의 사당을 새로 지었습니다.
⇒ ★같은 문제(신위를 모실 자리 부족)에 두 가지 다른 해법이 쓰인 셈입니다. 이후 증축은 «정전 자체를 옆으로 늘리는» 쪽으로, 세종대의 이 결정은 «아예 다른 건물을 짓는» 쪽으로 갔습니다. 정전을 계속 늘리기만 했다면 지금쯤 훨씬 더 길어졌을 텐데, 일부 신위를 별도 사당으로 옮기는 방법을 함께 씀으로써 정전의 증축 규모를 어느 정도 조절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반복되는 단위는 «고치기»도 쉽게 만듭니다
같은 구조가 반복되는 설계는 늘릴 때만 유리한 것이 아닙니다. 2025년, 종묘 정전은 5년에 걸친 대규모 수리를 마쳤습니다. 약 200억 원이 투입된 이 공사는 언론 보도에 따르면 1991년 이후 가장 큰 규모로 알려졌습니다(국가유산청 공식 보도자료에서는 이 비교 표현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 19칸 전체를 한꺼번에 완전히 뜯어내는 방식이 아니라, 신위를 다른 곳으로 옮긴 뒤 정전 건물 자체를 수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각 칸이 같은 구조를 반복하는 건물이라면, 한 칸에서 확인한 손상 유형이나 보수 방법을 다른 칸에도 거의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늘릴 때 편한 구조»가 «수백 년 뒤 고칠 때도 편한 구조»로 이어진 셈입니다.
실무 적용 — 반복되는 «단위」로 확장 가능하게 설계하기
- ★★나중에 늘어날 가능성이 있는 시스템은, 처음부터 «같은 규격의 단위」를 반복하는 구조로 설계하십시오. 정전의 각 칸이 같은 폭·같은 구조였기 때문에, 몇백 년 뒤에 늘려도 이질감 없이 이어졌습니다.
- ★확장 방향을 미리 하나로 정해 두십시오. 정전은 ‘옆으로만’ 늘린다는 원칙을 지켰기에, 늘어날 때마다 새로 설계를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 모든 확장을 «기존 것을 늘리는» 방법 하나로 해결하려 하지 마십시오. 종묘는 정전 증축과 별도 사당(영녕전) 신축을 상황에 따라 나눠 썼습니다.
정리하면
- 종묘 정전은 1395년 7칸으로 시작해 명종 원년 11칸, 1726년 15칸, 1836년 19칸까지 세 차례 증축을 거쳤습니다(1592년 임진왜란 소실 후 1608년은 늘리지 않고 옛 규모 11칸으로 중건만 했습니다).
- 신위를 모신다는 정전의 기능상, 위나 앞뒤가 아니라 «옆으로만» 칸을 늘리는 방향이 사실상 유일한 선택이었습니다.
- ⇒ 각 칸이 처음부터 같은 폭·같은 구조의 반복 단위로 설계됐기 때문에, 몇 세기에 걸쳐 늘어나도 하나로 이어진 건물처럼 보입니다.
- 1421년에는 정전을 늘리는 대신 별도 사당(영녕전)을 새로 지어, 증축과 신축을 상황에 따라 나눠 썼습니다.
본 콘텐츠는 종묘 정전의 증축 연혁을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자료를 중심으로 정리한 해설입니다. 영녕전 신축 사실도 같은 우리역사넷 자료로 직접 확인했습니다. ‘세계 최장 목조건물’ 여부처럼 근거가 약한 최상급 표현은 다루지 않았고, ‘1991년 이후 최대 규모’ 수리라는 언론 보도의 표현은 국가유산청 공식 보도자료에서 확인되지 않아 ‘~로 알려졌다’ 수준으로만 반영했습니다. 최종 확인일: 2026-09-26.
작성: Timonology 편집팀 — 「크게 지었다」가 아니라 「늘어날 것을 감안해 지었다」로 읽었습니다.
참고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종묘」
- 국민일보(2025.4.20), 종묘 정전 5년간 수리 완료 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