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열차분야지도, 별 1,467개를 새긴 돌이 닳자 292년 뒤 «다시» 새겼다
국립고궁박물관에는 같은 천문도를 새긴 돌이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1395년(태조 4)에, 다른 하나는 1687년(숙종 13)에 새겼습니다. 둘 사이는 292년입니다. 국가유산청 설명에 따르면 두 돌의 내용은 완전히 같습니다. 같은 지도를 왜 두 번 새겼을까요? 답은 지도가 아니라 «돌»에 있습니다.
1395년 — 새 왕조가 하늘부터 새겼다
국가유산청은 국보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을 직육면체 돌에 천체의 모습을 새긴 것으로 설명합니다. 조선을 세운 태조가 왕조의 권위를 드러내려고 권근, 유방택 등 천문학자 11명에게 명해 만들었습니다.
⇒ ★눈여겨볼 대목은 «처음부터 새로 그린 것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설명에 따르면 이 천문도는 고구려의 천문도를 표본으로 삼고, 그 오차를 고쳐서 완성했습니다. 옛 지도를 그대로 베낀 것도, 백지에서 시작한 것도 아니고 «물려받은 기준을 관측으로 고친» 작업이었습니다. 국가유산청은 이 각석이 고구려 천문도의 원형을 짐작하게 하는 유물이라고 평가합니다.
연대로 보면 이 석각천문도는 중국 남송의 『순우천문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것으로 소개됩니다.
돌 한 장에 무엇을 담았나
돌은 위아래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윗부분에는 짧은 설명과 함께 별자리 그림이, 아랫부분에는 천문도의 이름, 만든 배경과 과정, 만든 사람의 이름과 만든 때가 새겨져 있습니다.
별자리 그림의 짜임은 이렇습니다.
- 중심 — 북극
- 두 개의 큰 길 — 태양이 지나는 길인 황도, 그리고 남북극 한가운데를 도는 적도
- 구역 — 황도 부근의 하늘을 12등분
- 별 — 눈으로 관찰할 수 있는 별 1,467개를 점으로 표시
⇒ ★★이 짜임은 «예쁜 그림»이 아니라 «측정 도구»의 짜임입니다. 국가유산청 설명은 이 그림으로 해와 달, 다섯 행성(수성·금성·토성·화성·목성)의 움직임을 알 수 있고, 그 위치에 따라 절기도 구분할 수 있다고 적습니다. 황도는 태양의 길이고, 행성과 달도 그 근처를 지나갑니다. 그 띠를 12칸으로 나눠 두면 «지금 해와 행성이 어느 칸에 있는가»로 하늘의 시간을 읽을 수 있습니다. 별 1,467개는 그 칸들의 «눈금 표시» 역할을 합니다.
북극을 한가운데 둔 것도 같은 논리로 읽을 수 있습니다. 북반구에서 밤하늘을 오래 보면 모든 별은 북극 근처의 한 점을 중심으로 돕니다. 그 점을 원의 중심에 놓으면, 하늘의 하루 회전은 «원판을 돌리는 것»으로 단순해지고 별 사이의 상대 위치는 그대로 유지됩니다. 즉 이 돌은 «특정한 날 밤의 하늘 사진»이 아니라, 어느 날 어느 시각에든 돌려 맞춰 쓸 수 있는 «기준 지도»입니다. 이 해석은 일반 천문 원리에 따른 것이며, 국가유산청 설명이 직접 밝힌 내용은 아닙니다.
이름에도 이 구조가 들어 있습니다. 天象(하늘의 형상)을 列(벌여 놓고), 次(차례·구역)와 分野(나눈 들판)에 맞춘 圖(그림)라는 뜻입니다. 하늘을 구역으로 나누고 그것을 땅의 구역과 맞대는 동아시아 천문 전통이 제목에 그대로 박혀 있습니다. 다만 12개 구역이 각각 어느 땅과 짝지어졌는지는 국가유산청 설명이 다루지 않아 여기서는 풀지 않습니다.
1687년 — 돌이 닳아서 다시 새겼다
문제는 재료였습니다. 국가유산청은 1395년 각석의 표면이 심하게 깎여 나가 알아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적습니다. 보물 「복각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 설명은 그 결과를 분명히 밝힙니다. 처음 새긴 돌이 닳아 잘 보이지 않게 되자 숙종 13년(1687)에 다시 새겼다는 것입니다.

⇒ ★★복각본은 «새 판»이 아니라 «같은 판»입니다. 설명에 따르면 둥글게 그린 하늘 안의 별은 똑같이 1,467개이고, 아래에는 천문도를 만든 경위와 참여자 명단이 있으며, 설명문도 권근의 글 그대로입니다. 국가유산청은 구도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내용은 1395년 것과 완전히 같다고 정리합니다. 무엇을 다시 새길지 고친 것이 아니라 «읽을 수 있게» 다시 새긴 것입니다.
사진으로 두 돌을 나란히 보면 이 차이가 눈에 들어옵니다. 1687년 복각본은 맨 위에 제목 天象列次分野之圖가 또렷하고, 그 아래 별자리 원이 보입니다. 1395년 원석은 사진에서 별자리 원이 거의 드러나지 않고, 표면을 가로지르는 금까지 보입니다.
국가유산청은 이 천문도를 만든 이유와 과정이 『증보문헌비고』, 『상위고』, 『서운관지』에 기록돼 있다고 덧붙입니다. 돌은 닳았지만 «왜, 어떻게 만들었는가»는 문헌에 따로 남겨 둔 셈입니다.
실무 적용 —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두 돌을 볼 때
- 둘을 «원본과 사본»으로만 보지 말고 «같은 데이터의 두 저장 매체»로 보십시오. 내용이 같다는 것이 공식 설명입니다.
- 제목 글씨의 위치를 비교해 보십시오. 공식 설명이 말하는 «구도상 약간의 차이»가 어디인지 직접 찾아볼 수 있습니다.
- 원석에서 별을 찾기 어렵다면 그것이 정상입니다. 바로 그 이유로 복각본이 만들어졌습니다.
- 별 개수를 다르게 적은 자료를 만나면 출처를 확인하십시오. 국가유산청의 두 설명은 모두 1,467개로 일치합니다.
정리하면
- 1395년 태조의 명으로 권근·유방택 등 11명이 고구려 천문도를 표본 삼아 오차를 고쳐 새긴 천문도 각석입니다.
- ⇒ 북극을 중심에 두고 황도·적도를 긋고, 황도 부근을 12등분해 별 1,467개를 점으로 새겼습니다. 해·달·5행성의 움직임과 절기를 읽는 측정 도구였습니다.
- 원석 표면이 닳아 1687년(숙종 13) 같은 내용을 새 돌에 다시 새겼고, 두 돌 사이는 292년입니다.
- 복각본은 구도에서 약간 다를 뿐 별 수·설명문(권근의 글)까지 원석과 같다는 것이 국가유산청 설명입니다.
본 콘텐츠는 국가유산청 공식 설명 두 건(국보 원각석·보물 복각석)을 직접 조회해 정리했습니다. 12개 구역과 땅의 지역 대응, 별의 밝기 표시 방식 같은 도판 세부는 이번에 연 자료 범위 밖이라 다루지 않았습니다. 최종 확인일: 2026-10-23.
작성: Timonology 편집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