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천의와 간의 — 관측기기의 정밀도는 결국 ‘고리의 반지름’이 결정한다
세종 15년, 1433년 6월 25일. 정초와 박연, 김진 등이 혼천의를 완성했다. 간의는 1432년에 목제로 먼저 만들어 시험한 뒤 청동으로 주조했고, 1438년에는 경복궁 경회루 북쪽에 간의대를 세워 그 위에 대간의를 올렸다. 그런데 이 두 기계의 관계가 묘하다. 간의는 혼천의에서 고리를 여러 개 덜어낸 물건이다. 더 복잡한 것을 만들어 놓고, 다음 단계로 더 단순한 것을 만들었다.
기술사에서 이런 순서는 대개 후퇴처럼 보인다. 실제로는 정반대다. 조선 천문학자들은 4년 사이에 각도 측정이라는 문제의 정체를 정확히 파악했고, 그 답이 ‘고리를 줄이고 크게 만드는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왜 그런지는 계산으로 확인할 수 있다.
혼천의라는 기계 — 하늘의 모형
혼천의는 놋쇠 고리 여러 개를 동심으로 겹쳐 만든다. 각각의 고리가 하늘의 특정한 기준선을 대신한다.
적도환은 천구의 적도, 황도환은 태양이 1년에 걸쳐 지나가는 길이다. 황도환은 12등분되어 있고 각 구간이 30도씩이라, 이 고리 하나에 1년의 구조가 들어간다. 그 밖에 북회귀선과 남회귀선에 대응하는 회귀선환, 북극권과 남극권을 나타내는 극권환, 춘분점과 추분점을 지나는 분점권, 동지점과 하지점을 지나는 지점권이 있다.
즉 혼천의는 하늘의 기하학 전체를 놋쇠로 옮겨 놓은 물건이다. 이것을 손에 쥐고 돌리면 특정 날짜, 특정 시각에 하늘이 어떤 상태인지를 재현할 수 있다. 조선에서는 이 성격을 살려 혼천의를 주로 실내에 두고 천문시계처럼 활용했다. 1438년 세종 20년에 장영실이 흠경각을 짓고 그 안에 혼천의를 설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하늘을 재현하는 능력과 하늘을 재는 능력은 다른 문제다.
왜 고리를 덜어냈나
실제로 별 하나의 위치를 재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별을 겨눌 조준선 하나, 그 조준선이 적도면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읽을 눈금환 하나, 그리고 시각을 읽을 눈금환 하나면 된다. 나머지 고리는 재현에는 필요하지만 측정에는 방해가 된다.
간의는 정확히 그 판단을 실행한 물건이다. 혼천의의 여러 환 가운데 적도환과 백각환, 그리고 조준 장치인 사유환만 남겼다. 1437년 완성된 간의의 제도는 《원사》에 실린 곽수경의 방식을 따른 것이었다. 곽수경은 13세기 원나라에서 같은 결론에 도달해 있었고, 조선은 그 설계 사상을 검증된 것으로 받아들여 채택했다.
고리를 덜어내면 두 가지가 좋아진다. 첫째, 겹친 고리가 서로를 가리는 문제가 사라져 하늘의 더 넓은 범위를 볼 수 있다. 둘째 — 이쪽이 결정적인데 — 같은 재료와 같은 예산으로 남은 고리를 훨씬 크게 만들 수 있다.

분해능은 반지름에 비례한다
여기서 계산이 필요하다.
눈금환의 반지름을 R이라 하면 원주는 2πR이다. 각도 θ에 해당하는 호의 길이는 2πR·θ/360이다. 즉 같은 각도라도 고리가 크면 눈금 사이가 물리적으로 더 벌어진다. 각도를 읽는 정밀도는 눈금을 얼마나 세밀하게 새기고 얼마나 정확히 읽어내느냐로 결정되는데, 그 눈금이 실제로 몇 밀리미터 간격인지가 반지름 하나로 정해지는 것이다.
숫자를 넣어 보자. 반지름 50cm짜리 환이라면 원주는 약 3.14m이고, 1도에 해당하는 호는 약 8.7mm다. 여기에 1분각(1/60도)은 0.15mm에 불과하다. 육안으로 구분해 읽기 어려운 크기다.
반지름을 2m로 키우면 원주는 약 12.6m, 1도가 약 35mm가 되고 1분각은 0.58mm가 된다. 이 정도면 눈금을 새기고 읽는 것이 현실적인 범위에 들어온다. 사람 맨눈의 각분해능이 대략 1분각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관측자가 가진 눈의 성능을 낭비하지 않으려면 눈금환이 최소한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근대 천문 관측기기가 계속 커진 이유다. 정밀도를 사려면 크기를 사야 했다. 세종대에 경복궁 안에 간의대를 세우고 그 위에 대형 간의를 올린 것은 웅장함의 문제가 아니라 분해능의 문제였다.
그래도 크기만으로는 안 된다
다만 반지름은 분해능의 상한을 정할 뿐, 실제 정확도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실제 오차를 만드는 요인은 따로 있다.
눈금을 새기는 정밀도. 원주를 균등하게 분할해 새기는 일 자체가 고난도 작업이다. 분할이 조금씩 어긋나면 그 오차는 각도값에 그대로 실린다.
기기의 정렬. 적도환이 진짜 천구 적도와 나란해야 하고, 회전축이 진짜 천구 북극을 향해야 한다. 극축이 조금만 기울어도 모든 측정값에 계통 오차가 들어간다. 관측 전 정렬 작업이 관측만큼 중요했던 이유다.
구조의 처짐. 고리를 키우면 자기 무게로 변형된다. 반지름을 늘려 얻은 분해능을 재료의 처짐이 도로 까먹는 지점이 반드시 온다. 전근대 관측기기의 크기가 무한정 커지지 않은 실질적 한계가 여기다.
대기 굴절. 지평선 근처의 천체는 대기 때문에 실제보다 높이 떠 보인다. 기계가 아무리 좋아도 이 오차는 기계로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조선은 크기 하나에만 걸지 않았다. 간의를 관천대 위에 올려 쓸 수 있도록 작고 다루기 편하게 만든 소간의도 함께 두었다. 적도환·백각환·사유환 세 고리로 구성된 물건인데, 큰 기기가 정확도를 담당하고 작은 기기가 기동성과 상시 관측을 담당하는 역할 분담이다.
정직하게 짚어둘 것 — 우리는 그 정확도를 모른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한다. 세종대 간의가 실제로 몇 분각까지 재냈는지, 우리는 정량적으로 알지 못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원 기기가 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베이징과 난징에 전하는 간의는 중국에서 제작된 것이고, 세종대왕릉을 비롯해 국내에서 볼 수 있는 간의는 문헌 기록을 근거로 만든 복원품이다. 복원품의 성능을 측정해도 그것은 복원 설계의 성능이지 15세기 원 기기의 성능이 아니다.
기록에 남은 설계 사상과 규격에서 상한을 추정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추정이다. ‘조선의 간의가 몇 초각까지 정확했다’는 식의 단정적 서술을 만나면 그 근거가 원 기기 실측인지 복원품 실측인지 문헌 기반 추산인지를 먼저 확인하는 편이 좋다.
실무 적용 — 측정 도구를 고를 때 확인할 것
- 눈금 간격을 물리적 길이로 환산해 본다 — 각도든 무게든, 표시 단위가 실제로 몇 밀리미터에 해당하는지 계산하면 그 도구의 진짜 분해능이 나온다. 표시 자릿수는 분해능이 아니다.
- 정렬과 영점을 측정보다 먼저 챙긴다 — 간의의 극축 정렬처럼, 계통 오차는 아무리 여러 번 재도 평균으로 지워지지 않는다.
- 큰 도구와 작은 도구를 역할 분담시킨다 — 간의와 소간의의 조합처럼, 정확도용 기준기와 일상용 실무기를 따로 두는 편이 실제로 더 정확하다.
- 관측 대상이 아닌 매질을 의심한다 — 대기 굴절처럼, 도구 밖에서 들어오는 왜곡은 도구를 바꿔도 사라지지 않는다.
전시·소장처 — 지금 볼 수 있는 것
혼천의 계열 유물은 여러 곳에 흩어져 있다. 고려대학교 박물관에는 1669년 현종 10년에 송이영이 만든 혼천시계가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시계 장치와 혼천의를 결합한 물건으로, 조선 후기 기계 시계 기술을 보여주는 실물이다. 그 밖에 도산서원에 이황의 혼천의가, 국립청주박물관에 송시열의 혼천의가, 한국국학진흥원에 배상열의 혼천의가 전한다. 국립중앙과학관은 2009년 복원한 혼천의를 전시하고 있다.
관람 전에는 각 기관 누리집에서 상설전시 여부와 유물 교체 일정을 확인하는 편이 안전하다. 지정 현황과 유물 정보는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에서 조회할 수 있다.
혼천의에서 간의로 가는 4년은, 하늘의 모형을 만드는 일과 하늘을 재는 일이 다른 문제라는 것을 알아차린 시간이었다. 좋은 도구는 대체로 무언가를 더 넣어서가 아니라 무엇을 뺄지 결정해서 만들어진다.
제작 연도와 인물, 환의 구성은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혼천의」·「간의」 항목과 『세종실록』의 서술에 따랐습니다. 본문의 분해능 수치는 편집팀이 기하 기본식으로 계산한 예시값이며 특정 유물의 실측치가 아닙니다. 조선 간의의 실제 관측 정확도는 원 기기가 전하지 않아 정량적으로 확인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