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굴암은 판 것이 아니라 쌓은 것이다 — 돌 돔의 구조역학과 100년의 습기 전쟁
석굴암을 두고 흔히 ‘석굴’이라 부르지만, 이것은 산을 파고 들어간 굴이 아니다. 다듬은 돌을 하나하나 쌓아 올려 만든 인공 구조물이고, 그 위에 흙을 덮어 굴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돌을 쌓아 둥근 천장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돔은 서 있으려는 만큼 밖으로 밀어내려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구조물을 정말 곤란하게 만든 것은 무게가 아니라 물이었다. 20세기 내내 석굴암은 습기와 싸웠고, 그 싸움은 지금도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 싸움을 촉발한 원인이 다름 아닌 ‘보수’였을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는 점이다.
핵심 요약
- 석굴암은 천연 동굴이 아니라 조립된 석조 건축이다. 한반도의 단단한 화강암은 파 들어가기 어려워, 돌을 쌓아 굴을 ‘만드는’ 방식이 선택된 것으로 해석된다.
- 주실 천장은 판석을 층층이 좁혀 올린 궁륭(돔) 구조다. 아치와 돔은 하중을 압축력으로 바꿔 전달하는 대신, 바깥으로 벌어지려는 횡추력을 만들어 낸다.
- 이 힘을 잡아 주는 것이 판석 사이에 박힌 쐐기 모양의 동틀돌이다. 돌못처럼 뒤채움 층 속으로 뻗어 판석을 물어 준다.
- 원래 구조는 바닥 아래를 흐르는 지하수와 돌·흙을 통한 자연 환기로 결로를 다스렸다는 해석이 널리 논의된다. 다만 이는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 학설이다.
- 20세기의 보수에서 외부를 콘크리트로 덮으면서 이 균형이 깨졌다는 견해가 제기되었고, 이후 기계식 공조와 유리벽으로 관리하는 형태가 되었다.
- 교훈은 분명하다. 원래 설계의 작동 원리를 모른 채 ‘더 튼튼하게’ 고치면 시스템 전체가 망가질 수 있다.
파지 못하니 쌓았다
석굴 사원은 인도에서 시작해 중앙아시아와 중국을 거쳐 전해진 형식이다. 원형은 말 그대로 암벽을 파 들어가 내부에 예배 공간과 조각을 새기는 것이다.
그런데 한반도의 산은 주로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화강암은 단단하고 조밀해서 사암이나 응회암처럼 깎아 파 들어가기가 훨씬 어렵다. 대규모 공간을 파내는 일이 사실상 비현실적이라면 남는 선택지는 하나다. 공간을 파는 대신 쌓아서 만들고, 그 위를 덮어 굴로 만드는 것.
이 전환은 단순한 시공 방법의 변경이 아니다. 굴을 파는 일은 재료를 덜어내는 작업이고, 굴을 쌓는 일은 구조를 세우는 작업이다. 파낸 굴에서 천장은 주변 암반이 그대로 버티지만, 쌓은 굴에서 천장은 스스로 서 있어야 한다. 석굴암이 구조공학의 대상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형식은 석굴을 빌려 왔지만 풀어야 할 문제는 전혀 달랐다.
석굴암은 8세기 통일신라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전해지며, 『삼국유사』에는 김대성이 불국사와 함께 조성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다만 사료의 서술과 실제 공사의 경위를 얼마나 일치시켜 읽을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돔은 밖으로 밀어낸다
아치와 돔의 원리는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재료를 휘어지게 하지 말고 눌리게 하라.
돌은 압축에는 대단히 강하지만 인장과 휨에는 약하다. 돌 판을 수평으로 길게 걸치면 아래쪽에 인장이 생겨 갈라진다. 그래서 넓은 공간을 돌로 덮으려면 하중의 경로를 바꾸어야 한다. 아치는 위에서 누르는 힘을 곡선을 따라 옆으로 흘려보내며, 그 과정에서 각 부재는 오직 눌리기만 한다. 돔은 이 원리를 회전시켜 3차원으로 확장한 것이다.
그러나 대가가 있다. 하중을 옆으로 흘려보낸다는 것은 곧 구조의 아랫부분을 바깥으로 밀어낸다는 뜻이다. 이 횡추력을 붙잡지 못하면 돔의 밑동이 벌어지고 천장은 주저앉는다. 서양 석조 건축이 두꺼운 벽과 버트레스를 발달시킨 것도 이 힘을 잡기 위해서였다.
석굴암의 해법은 다르다. 다듬은 판석을 층층이 쌓아 올리며 안쪽으로 조금씩 좁혀 반구를 만들되, 판석과 판석 사이에 쐐기 모양의 돌을 박아 넣었다. 흔히 동틀돌이라 부르는 이 부재는 안쪽에서 판석을 물고 바깥으로 길게 뻗어, 돔을 감싼 뒤채움 층 속에 깊이 잠긴다.
작동 방식은 못이나 쐐기의 그것에 가깝다. 판석이 안으로 밀려 들어오려 하면 동틀돌이 붙잡고, 동틀돌의 뒤쪽 끝은 뒤채움의 무게와 마찰로 고정된다. 돔이 만들어 내는 횡추력을 구조물 바깥의 흙과 돌이 흡수하도록 경로를 만든 것이다. 두꺼운 벽 대신 돔과 주변 지반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은 셈이다.
구조만이 전부는 아니다. 원형 주실 중앙의 본존불을 중심으로 벽면에 십일면관음보살상과 제자상이 둘러 배치되고, 통로와 전실 쪽으로 사천왕과 팔부신중이 이어진다. 좁은 통로를 지나 원형 공간으로 들어서면 시야가 열리며 본존불과 마주하는 구성이다. 이 배치에 치밀한 비례 체계가 적용되었다는 분석이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으나, 어떤 원리였는지는 연구자마다 제시하는 체계가 다르고 사후에 발견한 수치 관계를 설계 의도로 확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신중론도 있다. 확실한 것은 이 공간이 구조와 조각과 동선을 함께 고려한 통합 설계라는 점이다.

물이라는 진짜 적
돌로 만든 구조물이 무너지지 않는다면 다음 문제는 표면이다. 그리고 석굴암을 오랫동안 괴롭힌 것은 결로였다.
원리는 단순하다. 습한 공기가 자기 온도보다 차가운 표면에 닿으면 이슬이 맺힌다. 조각이 새겨진 돌 표면이 주변 공기보다 차가우면 그 위에 물이 맺히고, 물기는 이끼와 미생물을 부르며 석재를 상하게 한다. 반대로 표면이 주변보다 따뜻하면 결로는 그곳에 맺히지 않는다. 결로 방지의 핵심은 습기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 맺힐지를 관리하는 데 있다.
널리 논의되어 온 해석은 이렇다. 원래의 석굴암은 바닥 아래로 찬 지하수가 흘렀고, 그래서 바닥이 구조물에서 가장 차가운 면이 되었다. 습기는 조각이 새겨진 벽면과 천장이 아니라 바닥 쪽으로 응결되어 배출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돌과 흙으로 이루어진 외피가 완전히 밀폐되지 않아 공기와 수증기가 서서히 오갈 수 있었다는 점도 지적된다. 결로를 억지로 막는 것이 아니라 맺힐 자리를 만들어 주고 흘려보내는 방식이다.
이 해석은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지만, 그것이 8세기 조성자들의 명시적 설계 의도였는지는 문헌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작동했다는 관찰과, 그렇게 되도록 의도했다는 주장은 구분해서 다루어야 한다.
더 튼튼하게 고쳤더니 망가졌다
20세기 초 석굴암은 대대적인 해체 보수를 겪는다. 이때 구조 보강을 목적으로 외부에 콘크리트가 씌워졌다. 이후 1960년대에 다시 대규모 보수가 이루어지며 콘크리트 돔이 추가되고, 전실 앞에 목조 건물과 유리벽이 설치되어 현재의 모습에 가까워졌다.
공학적으로 보면 콘크리트는 합리적인 선택처럼 보인다. 압축에 강하고 일체로 굳어 구조를 붙잡아 준다. 문제는 그것이 붙잡은 것이 하중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콘크리트로 감싸면 외피를 통한 공기와 수증기의 이동이 차단된다. 게다가 지하수 흐름과 지반 조건도 함께 손댈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내부는 밀폐된 공간이 되고, 바닥이 가장 차갑던 온도 분포는 흐트러진다. 습기가 나갈 길이 없는데 벽면과 천장이 더는 상대적으로 따뜻하지 않다면, 결로는 조각 표면에 맺히기 시작한다. 실제로 보수 이후 내부 결로와 이끼 문제가 심각하게 보고되었고, 이 인과관계는 오랫동안 논의의 중심에 있었다.
다만 여기서도 단정은 피해야 한다. 콘크리트 피복만이 유일한 원인이라 보기 어렵다는 지적, 관람객 증가에 따른 실내 온습도 변화와 주변 환경 변화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원인의 비중에 대해서는 연구자들 사이에 여전히 이견이 남아 있다.
차단된 자연 환기를 대신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 기계식 공조였다. 제습·공조 설비로 내부 온습도를 인위적으로 조절하고, 전실에 유리벽을 세워 관람객을 분리했다. 오늘날 방문객이 유리 너머로 본존불을 보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조치는 결로를 상당 부분 통제했지만 새로운 과제도 함께 낳았다.
- 영구적 의존 — 보존 상태가 설비 가동에 묶인다. 정전이나 고장, 유지비 부족이 곧바로 위험이 된다. 스스로 균형을 잡던 시스템이 계속 돌봐야 하는 시스템으로 바뀐 것이다.
- 인위적 기류 — 공조가 만드는 공기 흐름은 원래 없던 조건이다. 국부적 건조나 온도차가 새로운 손상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 경험의 상실 — 좁은 통로를 지나 본존불과 마주하도록 설계된 동선은 유리벽 앞에서 끊긴다. 구조는 지켰지만 그 구조가 만들려던 경험은 온전히 남지 않았다.
- 되돌리기의 어려움 — 콘크리트를 제거하고 원상 복원하자는 논의는 오래 이어졌으나, 해체 과정 자체가 큰 위험을 동반해 쉽게 결정하지 못한다.

쟁점과 한계 — 그리고 보존공학의 원칙
석굴암을 둘러싸고 아직 합의되지 않은 것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원래의 환기·배수 방식 — 지하수와 자연 환기가 결로를 다스렸다는 설명은 널리 받아들여지지만, 원래 구조가 정확히 어떤 형태였는지는 두 차례의 대규모 보수를 거친 뒤라 완전한 확인이 어렵다.
- 전실의 원형 — 전실이 원래 개방된 형태였는지 꺾인 형태였는지를 두고 오래된 논쟁이 있으며, 현재의 모습은 그 논쟁 속에서 내려진 선택의 결과다.
- 결로의 주된 원인 — 콘크리트 피복, 지반 조건 변화, 관람 환경 중 무엇이 얼마나 기여했는지에 대해 연구자마다 강조점이 다르다.
- 최적의 관리 방식 — 현재의 기계식 관리를 유지할 것인지, 부분적으로 자연 조절 방식을 회복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도 갈린다.
그럼에도 이 사례가 남긴 원칙 하나는 분명하다. 구조물은 재료의 목록이 아니라 작동하는 시스템이다. 어떤 구조가 오래 버텨 왔다면 그것을 가능하게 한 균형이 어딘가에 있고, 그 균형은 흔히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열과 물의 흐름, 공기의 이동, 지반과의 관계 같은 것들이다.
보강은 언제나 좋은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원래의 작동 원리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더 강한 재료를 덧씌우면, 하중은 잡아도 다른 흐름을 끊어 버릴 수 있다. 석굴암이 지난 100년간 겪은 일은 그 위험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오늘날 보존과학이 개입 최소화와 가역성, 그리고 개입 전 충분한 조사를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참고: 이 글은 석굴암의 구조 원리와 20세기 보수 이후의 보존 문제에 관한 공개된 연구·논의를 바탕으로 정리한 것이다. 조성 경위는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존하며, 결로의 원인과 최적 관리 방식에 대해서는 연구자 사이에 이견이 남아 있어 본문에서는 학설로 서술했다. 본문의 도해는 원리를 설명하기 위한 모식도이며 실측 도면이 아니다.
썸네일 사진: Wikimedia Commons (CC0).
작성 · Timonology 편집팀 — 한국 전통 과학·공학 유산을 현대 공학의 언어로 해설합니다. 복원·추정이 갈리는 사안은 단정하지 않고 학설을 함께 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