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선 경주 첨성대

첨성대는 정말 천문대인가 — 1,400년을 버틴 돌탑이 아직 대답하지 않은 것

경주 벌판 한가운데, 병을 엎어 놓은 듯한 돌탑이 1,400년째 서 있다. 우리는 그것을 ‘천문대’라고 부른다. 그런데 정작 이 구조물의 기능을 알려 주는 당대 기록은 단 몇 줄뿐이다. 형태는 이토록 정교한데, 용도는 왜 아직 논쟁 중일까.

핵심 요약

  • 첨성대는 7세기 신라 경주에 세워진 석조 구조물로, 방형 기단 위에 곡면을 이루는 원통형 몸체 27단, 남쪽 중간의 창구, 정상부의 정(井)자형 석재가 결합된 독특한 형태다.
  • 기능에 대해서는 천문 관측대설·제단(상징 건축)설·규표설 등이 오랫동안 경쟁해 왔고, 어느 하나가 학계에서 완전히 승리한 상태는 아니다.
  • 구조적으로는 단 쌓기의 곡면 형상과 내부 충전재(흙·자갈)가 무게 중심을 낮추고 흔들림을 분산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 단의 개수를 절기·달수·왕대에 대응시키는 상징 해석은 매력적이지만, 검증 가능한 형태로 반증하기가 어렵다는 약점이 있다.
  • 『삼국유사』 등 사료의 기술이 지극히 짧아, 기능을 문헌만으로 확정하기 어렵다.

먼저, 확실한 것부터

논쟁을 정리하려면 이견이 거의 없는 부분을 먼저 못 박아 두는 편이 낫다. 첨성대가 신라 선덕여왕 대에 축조된 것으로 전해지는 석조 구조물이라는 점, 경주 반월성 북쪽 평지에 자리한다는 점, 그리고 지금 서 있는 것이 후대의 복원 모형이 아니라 원래의 돌들이 대부분 그대로 남은 실물이라는 점이다. 기록과 복원품으로만 남은 다른 유산들과 비교하면 예외적인 조건이다.

형태도 명확하다. 아래는 네모난 기단, 위로는 병을 엎어 놓은 듯 배가 부르다가 좁아지는 원통형 몸체, 꼭대기에는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짜인 장대석이 얹힌다. 몸체는 다듬은 화강암을 쌓아 올린 27단이고, 남쪽면 중간 높이에 사람이 겨우 드나들 만한 창구가 뚫려 있다. 창구 아래 내부는 흙과 자갈로 채워져 통째로 빈 탑이 아니다.

첨성대의 기단·몸체·창구·정자석 구성을 단면으로 나타낸 모식도
첨성대의 층별 구성 — 기단, 원통형 몸체 27단, 남쪽 창구, 내부 충전재, 정상부 정(井)자석의 배치 (모식도)

세 갈래의 학설, 각각의 근거와 약점

첫째, 천문 관측대설. 이름 자체가 ‘별을 우러르는 대(瞻星臺)’이고, 후대 문헌들도 이곳을 천문과 연결해 언급한다. 삼국시대에 일식·혜성 기록이 꾸준히 남은 만큼 관측 자체가 이뤄졌다는 사실은 의심하기 어렵다. 다만 약점도 분명하다. 창구가 좁고 오르내리기가 불편하며, 정상부 공간도 상시 관측에는 협소하다. 관측 편의만 따진다면 굳이 이 형태일 이유가 없다.

둘째, 제단·상징 건축설. 왕권과 하늘을 잇는 의례 공간, 혹은 불교 세계관의 산을 형상화한 상징물로 보는 해석이다. 형태의 비효율성이 오히려 근거가 된다. 실용 장치라면 설명되지 않는 조형적 선택들이 상징물로 보면 자연스럽게 풀리기 때문이다. 약점은 ‘상징’이라는 설명이 거의 모든 형태를 사후적으로 수용할 수 있어, 무엇이 관측되면 이 설이 틀렸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셋째, 규표설. 규표는 해 그림자의 길이를 재어 절기와 시각을 정하는 장치다. 첨성대 혹은 그 주변 시설이 그림자를 이용한 측정에 쓰였다는 관점으로, 별을 보는 ‘관측’보다 그림자를 재는 ‘측정’에 무게를 둔다. 역법을 운용하려면 동지·하지를 정확히 잡는 일이 필수였다는 점에서 동기는 충분하다. 다만 그림자 측정에 필요한 기준면과 눈금 시설의 흔적을 현장에서 특정하기 어렵다는 반론이 따른다.

세 설이 서로 배타적이지 않다는 점도 중요하다. 전근대 사회에서 하늘을 읽는 일은 애초에 종교이자 정치이자 기술이었으므로, 의례의 상징물이면서 천문 기능을 겸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

첨성대 기능에 관한 세 가지 학설의 근거와 반론을 정리한 개념 도표
천문대설·제단설·규표설의 근거와 약점 비교 (개념 도표)

구조공학으로 본 첨성대 — 왜 무너지지 않았나

기능 논쟁과 별개로, 이 구조물이 1,400년 가까이 서 있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공학적 질문이다. 몇 가지 특징이 함께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 곡면 실루엣. 아래가 넓고 위로 좁아지는 형상은 무게 중심을 낮춰 수평 하중에서 전도(顚倒)에 유리하다.
  • 단 쌓기의 유연함. 모르타르 없는 조적 구조는 흔들림을 각 층의 미세한 어긋남으로 분산시킬 여지가 있다.
  • 내부 충전재. 아래쪽을 채운 흙과 자갈은 하부 질량을 키우고 돌벽의 변형을 억제한다.
  • 정(井)자형 석재. 안쪽으로 뻗은 장대석은 원통이 벌어지지 않게 잡아 주는 띠 역할을 겸한 것으로 본다.

다만 이 구조가 무한히 안전하다는 뜻은 아니다. 현재 첨성대는 기울기와 지반 침하가 계측되어 보존 관리의 대상이며, 인근 지진 이후로는 변위를 주기적으로 추적하고 있다. ‘오래 버텼다’와 ‘앞으로도 안전하다’는 별개의 명제다.

숫자의 유혹 — 27단, 12단, 28

첨성대 설명에 빠지지 않는 것이 숫자 해석이다. 몸체 27단은 신라 27대 왕인 선덕여왕, 기단을 더한 28은 하늘의 별자리 스물여덟, 창구를 기준으로 위아래 12단씩은 열두 달과 스물넷 절기 — 이런 식이다.

매력적인 이유는 분명하다. 실제로 그 숫자가 그 자리에 있고, 전근대 동아시아 건축에서 수(數)를 의미와 결부하는 관행도 널리 확인된다. 그러나 검증의 관점에서는 곤란한 성질이 있다. 숫자는 언제나 여러 방식으로 셀 수 있기 때문이다. 기단과 정자석을 포함할지, 어디를 한 단으로 볼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고, 여러 후보 중 의미 있는 수와 우연히 맞는 것을 고르면 해석은 언제나 성립한다. 설계 의도를 직접 진술한 기록이 없는 한, 이런 대응은 ‘가능한 독해’이지 ‘입증된 설계 원리’가 아니다.

쟁점과 한계 — 무엇이 아직 확실하지 않은가

가장 근본적인 제약은 사료다. 『삼국유사』의 관련 기술은 첨성대를 돌로 쌓았다는 사실을 전하는 수준에 가깝고, 누가 어떤 목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관측했는지를 밝히지 않는다. 후대 지리지류에도 언급이 있지만 축조로부터 수백 년 뒤의 기록이라 당대의 의도를 직접 증언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기능을 확정할 만한 1차 기술(記述)이 없다는 것이 이 논쟁이 길어진 가장 큰 이유다.

흔히 붙는 ‘현존 세계 최고(最古)의 천문대’라는 수식도 이 지점에서 조심스러워진다. 이 표현이 성립하려면 첨성대가 천문대라는 것, 그리고 이보다 오래되고 지금도 남아 있는 천문 시설이 없다는 것이 함께 전제되어야 한다. 앞의 전제부터 논쟁 중이고, 뒤의 전제는 ‘천문 시설’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진다. 세계 여러 지역에 천체 방향과 정렬된 훨씬 오래된 구조물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수식은 단정이 아니라 유보와 함께 쓰는 편이 정확하다.

남은 과제는 창구의 방위·고도와 천체 현상의 관계에 대한 정밀 계측, 주변 유구와의 배치 조사, 석재 가공 흔적 분석 같은 작업이다. 자료가 쌓이면 저울이 한쪽으로 기울 수는 있겠지만, 지금 하나의 답을 못 박는 것은 근거가 허락하는 범위를 넘어선다.

단정하지 않는 것이 이 유산을 대하는 방법

첨성대의 가치는 ‘세계 최초’라는 라벨이 아니라, 7세기의 기술자들이 돌을 곡면으로 쌓아 1,400년을 견디는 구조물을 만들었고 그 형태가 지금도 여러 해석을 동시에 감당할 만큼 정교하다는 데 있다. 무엇에 쓰였는지 아직 모른다는 문장은 깎아내리는 말이 아니라 더 물을 것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참고: 이 글은 『삼국유사』 등에 전하는 기록과 첨성대에 관한 국내 학계의 주요 학설을 정리한 것이다. 세부 수치와 해석은 연구자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기능에 관한 결론은 아직 열려 있다. 본문의 도해는 이해를 돕기 위한 모식도이며 실측 도면이 아니다.

썸네일 사진: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작성 · Timonology 편집팀 — 한국 전통 과학·공학 유산을 현대 공학의 언어로 해설합니다. 복원·추정이 갈리는 사안은 단정하지 않고 학설을 함께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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