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거북선 복원 모형

거북선은 정말 ‘철갑선’이었나 — 판옥선을 개조한 돌격 전투함의 구조공학

핵심 요약

  • 거북선은 무(無)에서 창조된 배가 아니라, 조선 수군 주력함 판옥선(板屋船)의 상부를 개장(改裝)해 덮개를 씌운 파생형 돌격함이다.
  • “철갑선”이라는 대중적 통설은 학계에서 확정되지 않은 논쟁 사안이다. 사료에는 개판(蓋板)에 쇠못(철첨, 鐵尖)을 박았다는 기록은 있으나, 선체 전면을 철판으로 덮었다는 확증은 없다.
  • 2층 구조설(김재근)과 3층 구조설이 대립하며, 이는 노 젓는 공간과 포 운용 공간의 배치 문제로 귀결된다.
  • 가장 널리 인용되는 「이충무공전서」(1795) 거북선 도설은 임진왜란 종전 200여 년 뒤 편찬물이라, 임진년 원형 복원의 직접 근거로 쓰기엔 한계가 있다.

거북선만큼 한국인에게 친숙하면서 동시에 오해가 많은 유물도 드물다. “세계 최초의 철갑선”이라는 수식은 교과서와 대중매체를 통해 상식처럼 굳었지만, 정작 조선 수군을 연구하는 공학사·해양사 학계의 결론은 훨씬 신중하다. 이 글은 국립박물관 복원 연구와 사료를 근거로, 거북선을 하나의 전투 플랫폼(weapon platform) 으로서 뜯어본다.

거북선은 ‘판옥선의 파생형’이다

판옥선→거북선 개장 모식도
판옥선에서 거북선으로의 개장 비교 (모식도)

거북선을 이해하는 첫걸음은 그것이 독립된 발명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의 주력 전투함은 판옥선이었다. 판옥선은 갑판 위에 다시 상장(上粧, 위층 구조물)을 올려 2층으로 만든 배로, 아래층에서 격군(格軍, 노 젓는 병사)이 노를 젓고 위층에서 사수(射手)가 활과 화포로 싸우는 전투·추진 공간 분리 구조가 핵심이었다.

거북선은 이 판옥선의 상부 개방 갑판을 개판(蓋板)으로 덮어 폐쇄한 형태다. 즉 “지붕을 씌운 판옥선”이라고 보는 것이 학계 정설이다. 이 개조의 공학적 목적은 명확하다. 적이 배에 뛰어들어 백병전을 거는 등선육박(登船肉薄) 전술을 원천 차단하는 것이다. 왜군의 강점은 조총과 칼을 든 병사가 아군 배에 올라타 근접전을 벌이는 데 있었고, 거북선의 덮개는 이 접근 자체를 봉쇄하는 방어 설계였다.

탑승 인원은 격군과 사수를 합쳐 대략 125명 안팎으로, 규모 자체는 판옥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거북선은 함대의 다수를 차지하는 주력함이 아니라, 적진 한복판으로 먼저 돌진해 진형을 무너뜨리는 소수의 돌격함(突擊艦) 이었다.

‘철갑선’ 논쟁 — 정설과 통설을 구분하자

가장 뜨거운 쟁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거북선이 철갑으로 선체를 두른 배였는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사료에 있는 것: 이순신의 장계(狀啓)와 후대 기록에는 거북선 등(개판) 위에 쇠송곳·쇠못(鐵尖)을 꽂아 적병이 기어오르지 못하게 했다는 서술이 있다. 이것은 비교적 근거가 있는 내용이다.
  • 확인되지 않은 것: “선체 전체를 철판으로 감쌌다”는 주장. 임진왜란 당시 일본 측 고문서와, 구한말 내한한 외국인의 저술에 ‘철갑’을 언급한 대목이 있어 통설의 근거가 되었지만, 이는 목격의 정확성·전언의 신뢰도 문제가 남는 2차 기록이다.
  • 공학적 반론: 일부 조선공학 연구자는 목선(木船)에 철판을 전면 부착할 경우 무게 증가로 인한 흘수(吃水)·복원성 저하, 그리고 해수에 의한 급속 부식 문제가 심각해 실전 효율이 떨어진다고 본다.

따라서 “철갑선”이라는 단정은 정설이 아니라 미해결 논쟁으로 다루는 것이 정확하다. 확인된 것은 “덮개에 쇠못을 박은 장갑(裝甲) 돌격함”이지, “철갑 순양함”이 아니다. (출처 확인 필요: 선체 전면 철갑 여부에 대한 결정적 물증은 현재까지 발굴되지 않았다.)

2층이냐 3층이냐 — 구조 복원의 핵심 논쟁

거북선 복원선 내부 갑판
거북선 복원선 내부 갑판 구조 (통영, 복원 모형). 사진: Junho Jung /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현대적 거북선 복원 연구의 출발점은 조선공학자 김재근(金在瑾) 이다. 그는 판옥선의 3층이 아닌 2층 구조설을 제시했고, 이는 오랫동안 지배적 학설이었다. 근거 중 하나는 개화기 무렵 거북선(또는 그 후신)을 접한 것으로 추정되는 헐버트(H. Hulbert) 등의 기록이 2층에 가까운 형태를 전한다는 점이다.

  • 2층 구조설: 아래층에 병사 휴식·무기 공간, 위층에 화포와 노. 단점은 노 젓기와 포 운용이 같은 층에서 뒤섞여 작업 동선이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다.
  • 3층 구조설: 1층 창고·군량, 2층 격군(노), 3층 포대. 이 경우 추진(노)과 화력(포)을 층으로 분리해 전투 효율이 높아지지만, 그만큼 건조 난도와 무게중심 문제가 커진다. 다수의 화포를 안정적으로 운용하려면 3층이 합리적이라는 주장이다.

이 논쟁은 단순한 ‘층수 세기’가 아니라, 노꾼과 포수를 어떻게 배치해야 돌격함이 제 기능을 하는가라는 함선 설계의 본질적 질문이다. 오늘날 각지에 전시된 거북선 복원선들이 서로 모양이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정본(正本)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2층설 vs 3층설 모식도
거북선 2층설 vs 3층설과 사료 비판 (모식도, 확정 정설 아님)

화력 배치 — 전방위 사격이 가능한 부양 포대

후대 기록인 통제영(統制營) 거북선 자료에 따르면, 포구(砲口)는 양현(뱃전 양쪽)에 각 22문, 앞쪽 거북 머리에 4문, 등 위에 12문 규모로 배치되어 사방으로 화포를 쏠 수 있었다. 거북선은 백병전을 봉쇄하는 대신 천자·지자·현자총통 등 화포로 적선을 무력화하는, 말하자면 ‘움직이는 폐쇄형 포대(floating battery)’였다.

거북 머리(용두, 龍頭)에서 연기 또는 화포를 뿜었다는 서술도 있는데, 이것이 위협·연막용이었는지 실제 발사구였는지는 기록마다 편차가 있어 단정하기 어렵다.

사료 비판 — 어떤 기록을 믿을 것인가

거북선 복원의 가장 큰 난점은 동시대 설계도가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보는 상세 도설은 정조 대에 편찬된 「이충무공전서」(1795)에 실린 ‘전라좌수영 거북선’과 ‘통제영 거북선’ 그림인데, 이는 임진왜란 종전으로부터 200여 년이 지난 뒤의 기록이다. 그 사이 거북선은 계속 개량·변형되었으므로, 이 도설을 임진년(1592) 원형의 직접 증거로 삼기엔 무리가 있다.

상대적으로 신뢰도가 높은 1차 사료는 이순신 본인의 『난중일기』와 조정에 올린 장계, 그리고 『선조수정실록』이다. 다만 이 기록들은 전투 보고 위주여서 구조·치수에 대한 정보가 단편적이라는 한계가 있다. 결국 거북선 연구는 “단편적 1차 사료 + 후대 도설 + 조선공학적 추론”을 교차 검증하는 작업이며, 그래서 아직도 확정 복원본이 없는 것이다.

맺음 — 신화보다 흥미로운 ‘설계 사상’

거북선의 진짜 가치는 “세계 최초 철갑선”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타이틀에 있지 않다. 그 가치는 명확한 전술 목표(등선육박 차단 + 근접 화력 돌격)에서 역산해 판옥선을 개조한, 목적 지향적 설계 사상에 있다. 적의 강점(백병전)을 물리적으로 봉쇄하고 아군의 강점(화포)을 극대화한 이 사고방식은, 현대 무기체계 설계의 ‘위협 기반 요구공학’과 정확히 같은 논리다. 통설을 걷어내고 볼 때, 거북선은 더 정직하게 위대해진다.

참고 자료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거북선」 (encykorea.aks.ac.kr/Article/E0001833)
  • 경상남도 충무공 이순신 프로젝트, ‘군선의 세계 — 1592년 거북선 복원’ (yi-sunsin.gyeongnam.go.kr)
  • 나무위키, 「거북선/구조 및 재질」 (일반 개요 참고용, 1차 사료 아님)
  • 김재근, 『한국선박사연구』 등 조선공학 복원 연구 계열(2층 구조설의 학술적 출발점)
  • 1차 사료: 『난중일기』, 이순신 장계, 『선조수정실록』, 후대 편찬물 『이충무공전서』(1795)

본 원고는 검증된 사료·연구에 근거하며, 확정되지 않은 사안(선체 전면 철갑 여부, 임진년 원형의 층수)은 ‘논쟁’ 또는 ‘확인 필요’로 명시했습니다.

작성 · 한국공학사 편집팀 — 한국 전통 과학·공학을 유물·사료·1차 자료 기준으로 정리합니다. 본 콘텐츠는 정보·해설 목적이며, 사료 특성상 추정값은 본문에 명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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