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여지도의 한 도엽. 산줄기와 하천, 지명이 목판 인쇄로 찍혀 있다

대동여지도의 정확도는 어디까지였나 — 축척 수치가 자료마다 다른 이유부터

참고자료 · 자료 시점
핵심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대동여지도」(E0014266) — 간행 연혁·첩 구성,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대동여지도 목판」(E0069797)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목판(보물),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정호」(E0010423), 축척 역산: 도엽 규격·첩 수·전체 치수로부터 편집팀 직접 계산
자료 시점 — 1861년 간행 + 현재 소장·공개 현황
정리 — Timonology 편집팀 · 2026.7

대동여지도의 축척을 찾아보면 자료마다 숫자가 다르다. 1:160,000이라는 설명이 있고, 1:216,000이라는 설명도 있다. 두 값의 차이는 30퍼센트를 넘는다. 지도를 다루는 글에서 축척이 이 정도로 흔들린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런데 이 불일치를 파고들면, 대동여지도가 어떤 원리로 만들어진 지도인지가 오히려 선명해진다. 답부터 말하면 이렇다. 대동여지도는 미터법으로 만들어진 지도가 아니고, 그래서 미터법 축척으로 환산하는 순간 환산 계수를 무엇으로 잡느냐는 문제가 끼어든다.

지도의 기본 제원

먼저 확인된 사실부터 정리한다.

김정호가 1861년, 철종 12년에 만들었다. 1864년 고종 원년에 다시 인쇄된 판본이 갑자본이다. 전체는 22첩으로 나뉘어 있고, 모두 펼쳐 이어 붙이면 자료에 따라 가로 3.6~3.8m, 세로 6.7~6.9m에 이른다. 접어서 책 형태로 만들면 한 첩이 가로 20cm, 세로 30cm 남짓이 된다.

여기서 이미 설계 의도가 읽힌다. 벽 하나를 덮는 물건을 만든 것이 아니라, 손에 들 수 있는 22권짜리 책으로 접히는 대형 지도를 만든 것이다. 펼치면 벽을 덮고 접으면 봇짐에 들어간다.

이 구조를 가능하게 한 것이 도엽 규격의 통일이다. 각 면은 동서 80리, 남북 120리를 담는다. 모든 면이 같은 범위를 담으므로 어느 면을 어디에 붙여도 눈금이 맞는다. 이 규격에 맞춰 지도 전체를 여러 도엽으로 나눠 새겼고, 간행 당시 목판은 모두 60매 정도였을 것으로 추산된다.

축척은 왜 갈리는가 — 계산해 보자

이제 축척 문제다. 지도의 제원으로 역산할 수 있다.

22첩이 남북 방향으로 쌓이고 각 첩이 남북 120리를 담는다면, 지도 전체가 담은 남북 거리는 22 곱하기 120, 즉 2,640리다. 이 2,640리가 실제 종이 위에서 685cm를 차지한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2,640리는 몇 킬로미터인가?

조선의 리는 시대와 용도에 따라 값이 달랐다. 흔히 조선 후기의 1리를 약 0.4km로 잡는다. 국립중앙박물관도 대동여지도 목판 한 매가 담는 범위를 남북 약 47km(120리), 동서 약 63km(160리)로 설명하는데, 역산하면 1리가 0.39km 남짓이다. 이 값을 넣으면 2,640리는 약 1,056km가 된다. 종이 위의 685cm와 대응시키면 축척은 약 1:154,000이 나온다. 통상 인용되는 1:160,000과 거의 맞아떨어진다.

한반도의 실제 남북 길이가 대략 1,000km 수준이라는 점과도 잘 맞는다. 즉 1리를 0.4km 안팎으로 잡는 환산이 실측 지리와 정합적이다.

반면 축척을 1:216,000으로 잡으면 685cm에 대응하는 실제 거리가 약 1,480km가 된다. 그러려면 1리를 0.56km로 잡아야 하는데, 이 경우 지도가 담은 남북 거리가 한반도의 실제 크기를 훌쩍 넘어선다.

그러므로 축척 수치가 갈리는 원인은 지도가 아니라 환산 계수에 있다. 어떤 리 값을 썼는지, 어느 구간을 기준으로 쟀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자료에서 축척 수치를 만나면 그 값이 어떤 리 환산을 전제했는지 함께 확인하는 편이 정확하다.

대동여지도의 다른 도엽. 해안선과 섬, 도로가 표시되어 있다
대동여지도의 또 다른 도엽. 도엽마다 동서 80리, 남북 120리를 담도록 규격이 통일되어 있어 여러 장을 이어 붙일 수 있다. 사진: 김정호 원도, 규장각 소장본 /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10리마다 찍은 점의 의미

대동여지도에서 자주 언급되는 특징이 도로 위에 10리마다 찍은 점이다. 여행할 때 거리를 가늠하기 쉽게 하려는 표시다.

이 장치의 공학적 의미는 축척자를 지도 안에 내장했다는 데 있다. 별도의 자를 대지 않고 점의 개수만 세면 거리가 나온다. 목판 인쇄물은 종이가 습도에 따라 늘어나고 줄어드는데, 인쇄된 점끼리는 함께 늘어나고 함께 줄어들므로 상대적 거리 정보는 보존된다. 종이 변형에 강한 거리 표시 방식인 셈이다.

한편 이 점의 간격이 지형에 따라 달라져 길의 험난함을 나타냈다는 해석도 널리 소개된다. 평탄한 길에서는 점 사이가 넓고 산길에서는 좁아진다는 것인데, 이는 실제 이동 거리와 도상 직선거리의 차이를 반영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다만 이 해석이 모든 구간에 일관되게 적용되는지는 도엽별 실측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라, 여기서는 제기된 해석으로 소개해 둔다.

‘가장 정확한 지도’라는 평가를 정확히 읽는 법

대동여지도는 근대적 측량이 이루어지기 전에 제작된 한반도 지도 중 가장 정확한 지도로 평가받는다. 이 평가는 타당하지만, 어떤 종류의 정확도인지를 구분해야 한다.

대동여지도가 잘한 것. 산줄기와 물줄기의 연결 관계, 고을 사이의 상대적 위치와 거리, 도로망의 연결 구조. 즉 위상 관계와 상대 거리의 정확도다. 여기에는 오랜 기간 축적된 지리지와 각지의 읍지, 기존 지도들의 정보가 종합되어 있다.

대동여지도가 하지 않은 것. 삼각측량을 통한 절대좌표 확정이다. 대동여지도는 경위도 좌표계 위에 각 지점을 앉히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지도가 아니다. 기준점을 세우고 각도를 재어 삼각형을 확장해 나가는 근대 측량 체계는 이후의 것이다.

이 차이가 실제로 무엇을 뜻하는가. 지도 위 두 지점 사이의 거리를 재면 상당히 잘 맞지만, 특정 지점의 절대 위치를 현대 좌표와 겹쳐 보면 지역에 따라 편차가 나타난다. 특히 오차는 누적되는 성질이 있어서, 기준점에서 멀어질수록, 그리고 험한 지형과 해안·도서 지역에서 커지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결점이라기보다 목적의 차이다. 대동여지도는 실제로 걸어 다니며 쓰는 지도였다. 여기서 저기까지 며칠 걸리는지, 이 강을 어디서 건너는지가 중요했고, 절대 경위도는 필요하지 않았다. 도구는 용도에 맞춰 정확도를 배분한다.

목판이라는 매체가 강제한 것

대동여지도는 목판으로 인쇄됐다. 이 선택 역시 지도의 형태를 규정했다.

목판 인쇄는 같은 판으로 여러 부를 찍어낼 수 있다. 필사본 지도가 한 부만 존재하는 것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지도가 정보이자 상품이 되려면 복제 가능해야 하고, 목판은 그 조건을 만족시켰다.

대신 제약이 따른다. 목판 한 장의 크기에는 한계가 있다. 나무는 크게 만들수록 휘고 갈라지며, 습도에 따라 수축·팽창한다. 그래서 지도를 도엽 단위로 잘게 나눌 수밖에 없었고, 그 나눈 단위가 동서 80리·남북 120리라는 규격으로 통일된 것이다. 매체의 물리적 한계가 지도의 편집 체계를 결정했다.

현존 목판은 이 구조를 보여준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11매는 1923년 조선총독부 박물관이 최한웅에게서 구입한 것으로 2008년 보물로 지정됐고, 숭실대학교 기독교박물관에 1매가 더 전한다. 합쳐 12매이니 간행 당시 60매 안팎으로 추산되는 전체의 약 5분의 1이다. 목판은 표제를 새긴 한 매를 빼면 모두 앞뒤 양면에 조각돼 있고, 한 면이 동서 160리 곧 두 면분을 담으므로 목판 한 매가 네 면분을 감당한 셈이 된다. 목재를 아끼면서 판의 수를 줄이는 실용적인 방식이다.

김정호를 둘러싼 이야기 — 근거를 확인해야 할 부분

대동여지도를 이야기할 때 거의 빠지지 않는 서사가 있다. 김정호가 백두산을 여러 차례 올랐다거나, 지도를 만든 죄로 옥에 갇혀 죽었다는 이야기다.

이 서사들은 사료적 근거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김정호의 생애에 관한 확실한 기록 자체가 매우 적고, 널리 알려진 일화의 상당 부분은 후대에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는 견해가 있다.

기술사 관점에서 보면 이 서사에는 별도의 문제가 있다. 한 사람이 발로 걸어 국토 전체를 실측했다는 그림은, 대동여지도가 실제로 만들어진 방식을 오히려 흐린다. 이 지도의 성취는 개인의 답사량이 아니라 기존에 흩어져 있던 방대한 지리 정보를 하나의 규격 체계 안에 편집해 넣고, 그것을 복제 가능한 형태로 만들어낸 편찬·설계 작업에 있다. 자료를 모으고, 서로 어긋나는 정보를 조정하고, 통일된 도엽 규격을 설계하고, 목판으로 옮기는 일이다.

영웅 서사는 감동적이지만, 이 경우에는 진짜 성취를 가린다.

실무 적용 — 옛 지도를 볼 때 확인할 것

  • 축척 수치는 환산 근거를 함께 본다 — 리·보·척 같은 전통 단위가 개입한 축척은 환산 계수에 따라 값이 달라진다. 숫자만 인용하면 오차가 그대로 옮겨 붙는다.
  • 상대 정확도와 절대 정확도를 구분한다 — 두 지점 사이 거리가 잘 맞는 것과, 특정 지점의 좌표가 잘 맞는 것은 다른 문제다. 옛 지도는 대개 전자가 강하다.
  • 매체의 제약에서 편집 체계를 역추적한다 — 도엽 크기, 접는 방식, 분할 단위는 대개 인쇄·제본 기술의 한계가 정한다. 왜 이렇게 나눴는지를 물으면 제작 조건이 보인다.
  • 거리 표시 장치를 먼저 찾는다 — 10리 점처럼 지도 안에 내장된 축척자가 있으면, 그것으로 지도가 상정한 사용법을 알 수 있다.

직접 보러 가는 법

대동여지도는 여러 기관에 소장본이 전한다. 이 글에 실린 도판은 규장각 소장본이며, 국립중앙박물관은 보물로 지정된 목판 11매를 소장하고 있다. 숭실대학교에도 판목이 있다.

원본 지도는 크기와 보존 문제 때문에 상설 전시되지 않는 경우가 많으므로, 방문 전 각 기관 누리집에서 전시 여부를 확인하는 편이 좋다. 최근에는 고지도를 고해상도 이미지로 공개하는 기관이 늘고 있어, 도엽 단위로 확대해 보면서 산줄기 표현이나 10리 점의 간격을 직접 세어 보는 것도 가능하다. 지정 현황과 소장 정보는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에서 조회할 수 있다.

대동여지도를 앞에 두고 물어야 할 것은 ‘얼마나 정확한가’가 아니라 ‘무엇에 대해 정확한가’다. 걸어 다니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정확도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점 — 이 지도의 설계가 뛰어난 이유는 거기에 있다.

간행 연도, 첩 수, 전체 치수, 도엽 규격, 현존 목판 정보는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대동여지도」·「대동여지도 목판」 항목에 따랐습니다. 축척 역산과 목판 1매당 도엽 수 추정은 편집팀이 위 제원으로부터 직접 계산한 것으로, 계산 전제(조선 후기 1리 ≈ 0.4km)를 본문에 명시했습니다. 10리 점 간격과 지형의 관계, 김정호의 생애에 관한 서술은 학계 논의가 갈리는 사안이라 확정된 사실로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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