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근이 600g이기도 하고 375g이기도 한 이유 — 조선의 도량형과 표준이라는 권력
정육점에서 “한 근 주세요”라고 하면 600그램이 나온다. 그런데 한약재나 채소를 근으로 살 때의 한 근은 375그램이다. 같은 나라, 같은 시대, 같은 글자인데 무게가 1.6배 차이 난다.
이 이상한 현실은 도량형이 어떤 물건인지를 정확히 보여 준다. 단위는 자연법칙이 아니다. 합의다. 합의가 여러 개면 단위도 여러 개가 된다. 그리고 합의를 누가 정하고 누가 검사하느냐는, 언제나 권력의 문제였다.
조선은 이 문제를 알고 있었다. 세금을 곡물로 걷고 옷감을 자로 재던 나라에서, 되 하나 자 하나의 크기는 국가 재정과 직결됐다. 도량형은 문화가 아니라 행정 인프라였다.
도(度)·량(量)·형(衡)은 서로 다른 문제다
도량형이라는 말 자체가 세 글자로 나뉜다.
- 도(度) — 길이. 자로 잰다. 토지, 건축, 직물에 쓴다.
- 량(量) — 부피. 되와 말로 잰다. 곡물 거래와 조세에 쓴다.
- 형(衡) — 무게. 저울로 잰다. 약재, 금속, 귀중품에 쓴다.
셋을 굳이 나눈 이유가 있다. 재는 방식이 다르고, 오차가 생기는 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자는 눈금이 새겨진 물건 하나면 되지만, 되는 담는 방식이 결과를 바꾼다. 곡물을 수북이 담느냐 깎아 담느냐, 흔들어 다지느냐에 따라 같은 되에서 나오는 양이 달라진다. 저울은 또 다르다. 받침점 위치와 추의 무게가 함께 맞아야 한다.
전근대의 부정은 대개 이 틈에서 나왔다. 눈금을 속이는 것보다 재는 절차를 속이는 편이 쉬웠다.
기준은 어디서 가져오나 — 기장 알과 황종척
단위를 정하려면 출발점이 필요하다. 1자를 1자라고 부르려면, 그 1자가 무엇인지 다른 무엇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동아시아가 오래 쓴 방법은 음악이었다. 기준음을 내는 관(황종관)의 길이를 재는 자, 그것이 황종척(黃鍾尺)이다. 황종관의 표준 길이는 9치 9푼으로 잡혔다. 그러면 그 관의 길이는 어떻게 정하나. 기장(黍) 알을 일정 개수 늘어놓거나 쌓아 그 길이로 삼는 방식이 흔히 쓰였다. 관을 땅에 묻어 절기의 기(氣)를 살핀다는 방법도 문헌에 있지만, 실제로는 앞의 방식이 주로 쓰였다.
여기서 근본적인 약점이 드러난다. 기장 알의 크기는 일정하지 않다. 품종과 그해 작황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니 이 기준으로 만든 자는 만들 때마다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다. 오늘날 우리가 “1자는 30.3센티미터”라고 말할 때의 그 값은, 전근대 내내 고정돼 있던 숫자가 아니라 근대에 미터법과 맞추면서 확정된 환산값이다.
기준을 ‘자연에 있는 물건’에서 가져오려는 시도, 그리고 그 물건이 변한다는 문제. 이 구조는 21세기까지 그대로 이어진다. 뒤에서 다시 보자.

되가 커지면 세금이 오른다
도량형이 왜 정치인지는 조세를 대입하면 즉시 보인다.
세금을 곡물로 걷는 나라에서, 조세 대장에 적힌 숫자는 “쌀 몇 석”이다. 그런데 그 석은 되로 세어 채운 값이다. 만약 어떤 고을에서 쓰는 되가 표준보다 5퍼센트 크다면, 장부상 세액은 그대로인데 실제로 걷히는 곡물은 5퍼센트 늘어난다. 법을 고치지 않고도 세율을 올린 것과 같다. 반대로 되가 작으면 국고가 샌다.
같은 논리가 시장에도 적용된다. 파는 쪽과 사는 쪽이 다른 되를 쓰면 거래는 성립하지 않거나, 힘 있는 쪽의 되가 이긴다. 그래서 전근대 국가에서 도량형 통일은 늘 두 가지를 동시에 노렸다. 재정의 정확성과 시장 질서다.
여기에 하나가 더 붙는다. 상징이다. 도량형을 정하고 반포하는 권한은 통치의 표식이었다. 자와 되를 누구의 기준으로 쓰느냐는 곧 누구의 질서 아래 있느냐는 물음과 겹쳤다.
근대의 전환 — 검정 기관이 등장하다
단위를 정하는 것과 그 단위가 실제로 지켜지는 것은 다른 일이다. 후자를 담당하는 것이 검정(檢定), 즉 시중에서 쓰이는 자와 되와 저울이 기준에 맞는지 검사하고 표시하는 제도다.
한국에서 이 기능이 근대적 기관 형태로 정리된 것은 대한제국기다. 1902년 도량형 규칙이 마련되며 평식원(平式院)이 설치됐고, 1905년에는 도량형법이 법률로 공포됐다. 그러나 1909년 일본식 체계로 개정되면서 이 흐름은 식민 지배의 제도로 넘어간다.
미터법으로의 전환은 그보다 훨씬 뒤다. 연표는 이렇다.
- 1961년 — 국제단위계(SI)를 법정 계량 단위로 채택.
- 1964년 — 공적 거래에서 전통 단위 사용 금지 시행.
- 1983년 — 전통 단위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미터법 준수를 요구.
- 2007년 — 상거래에서의 전통 단위 사용에 대한 처벌 규정이 적용됨.
법이 네 번에 걸쳐 같은 말을 반복했다는 사실 자체가 답이다. 단위는 법령만으로 바뀌지 않는다. 40년을 밀어붙여도 아파트는 여전히 평으로, 금은 돈으로, 고기는 근으로 거래된다.
지금 표준은 ‘물건’이 아니다
현대 계량의 역사도 같은 문제에서 출발했다. 1875년 5월 20일, 17개국이 파리에서 미터협약에 서명하며 국제 공통 표준 체계가 시작됐다. 이 협약은 2025년에 150주년을 맞았다.
초기의 해법은 조선의 황종척과 발상이 같았다. 기준이 되는 물건을 만들어 보관하는 것이다. 백금-이리듐 합금으로 만든 국제킬로그램원기가 그것이다. 유리종 안에 넣어 보관하고, 각국은 그 복제본을 받아 자기 나라의 기준으로 삼았다.
문제도 같았다. 물건은 변한다. 각국이 보관한 원기들을 주기적으로 비교한 결과, 제작 이후 연간 최대 2×10⁻⁸ kg(약 20마이크로그램) 수준의 드리프트가 관측됐다. 기준이 조금씩 움직인다면, 그 기준으로 잰 모든 값이 함께 움직인다.
그래서 2019년 5월 20일, 국제단위계가 바뀌었다. 미터협약 서명 144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새 체계는 기본단위를 변하지 않는 물리 상수에 묶었다.
- 킬로그램 — 플랑크 상수(h)
- 초 — 세슘-133 원자의 전이 주파수
- 미터 — 빛의 속도(c)
- 암페어 — 기본전하(e)
- 켈빈 — 볼츠만 상수(k)
- 몰 — 아보가드로 상수(Nₐ)
국제킬로그램원기는 이때 공식적으로 퇴역했다. 기장 알에서 시작해 백금 덩어리를 거쳐 플랑크 상수에 도달하기까지, 문제의식은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변하지 않는 기준을 어디서 구할 것인가.
이 체계는 지금도 관리된다. 국제도량형국(BIPM)과 국제법정계량기구(OIML)는 매년 5월 20일을 세계 측정의 날로 기념하는데, 2026년 5월 20일의 주제는 “Metrology: Building Trust in Policy Making”, 즉 정책 결정의 신뢰를 세우는 계량이다. 200년 전 되의 크기가 세금을 바꿨듯, 지금은 측정의 신뢰가 정책을 바꾼다는 이야기다.
쟁점 — 조심해서 말해야 할 것들
- “조선이 도량형을 통일했다”는 문장은 범위를 정해야 성립한다. 기준을 제정하고 반포하는 일과, 전국의 모든 시장에서 같은 되가 쓰이도록 만드는 일은 다른 난이도의 과제다. 후자가 어디까지 달성됐는지는 지역·시기별 자료를 따져야 하며, 하나의 문장으로 단정하기 어렵다.
- 현대 환산값을 과거에 그대로 대입하면 안 된다. 1자 30.3cm, 1되 1.8L, 1냥 37.5g 같은 값은 근대 이후 정리된 수치다. 같은 ‘자’라도 시기와 용도(건축용·직물용·토지측량용)에 따라 실제 길이가 달랐다.
- 어느 나라가 더 앞섰다는 비교는 성립하지 않는다. 도량형 체계는 각 지역의 조세 구조와 주요 거래 품목 위에서 발달했다. 정밀도만 떼어 순위를 매기는 서술은 대개 근거가 없다.
- 지금도 통일은 끝나지 않았다. 육류의 한 근이 600g, 그 밖이 375g으로 갈리는 현실이 그 증거다. 법정 단위 체계가 있어도, 관습 단위는 거래 현장에서 살아남는다.
직접 확인해 보는 법
- 거래 전에 ‘그 근이 몇 그램인가’를 물어라 — 정육, 건어물, 한약재, 채소는 관행이 제각각이다. 600g인지 375g인지 확인하는 한마디가 가격 비교의 출발점이다.
- 부동산 광고를 볼 때는 평을 제곱미터로 되돌려 계산하라 — 1평은 약 3.3058㎡다. 광고에 적힌 ‘몇 평’과 등기·계약서의 제곱미터 값을 직접 곱해 대조하면 표기 오차를 잡아낼 수 있다.
- 금은방에서는 ‘돈’이 3.75g임을 기억하라 — 시세는 대개 그램 단위로 고시된다. 3.75를 곱해 두면 제시 가격이 시세와 얼마나 벌어져 있는지 즉시 보인다.
- 저울을 살 때는 검정·형식승인 표시를 확인하라 — 상거래용 저울은 법정계량기로서 검사 대상이다. 표시가 없는 기기는 분쟁이 생겼을 때 근거가 되지 못한다.
- 수치를 인용할 때는 ‘언제 기준의 단위인가’를 함께 적어라 — 옛 문헌의 석·냥·자를 현대 단위로 옮길 때는 환산 기준을 밝혀야 한다. 밝히지 않은 환산값은 검증할 수 없는 숫자가 된다.
도량형의 역사는 결국 하나의 질문을 반복한다. 믿을 수 있는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가. 기장 알은 해마다 달랐고, 백금 원기는 미세하게 변했다. 그래서 인류는 결국 아무도 만질 수 없는 것 — 물리 상수 — 에 기준을 걸었다. 정육점에서 “한 근 주세요”라고 말하는 순간에도, 그 저울의 눈금은 플랑크 상수까지 이어진 사슬 위에 놓여 있다.
이 글은 공개된 단위 환산 자료와 국제 계량기구의 공식 정보를 정리한 정보·해설 글이다. 전근대 도량형의 실제 운용은 시기와 지역에 따라 편차가 크므로, 특정 수치를 사료 해석에 그대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
대표 이미지는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가 촬영한 킬로그램 원기 사진으로, 한국의 유물이 아니다. 표준을 ‘물건’으로 보관하던 시기를 보여 주기 위해 사용했다.
작성 · Timonology 편집팀 — 한국 전통 과학·공학 유산을 현대 공학의 언어로 해설합니다. 복원·추정이 갈리는 사안은 단정하지 않고 학설을 함께 적습니다.